넋도 유족도 하늘도 울었다/임정선열 상해 천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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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랑빗속 유골 수습/“늦게나마 광복의 한 푸소서”
【상해=김준범특파원】 박은식선생 등 임시정부 선열5위의 유해에 대한 천묘식이 열린 중국 상해 외국인 전용묘역인 만국공묘내 빈터­. 광복 48년만에 수난으로 얼룩졌던 우리 민족사에 찬란한 빛을 남기고 가신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발자국을 다시금 우러러 추앙하는 감동어린 순간이었다.
이날 천묘식에는 이충길 보훈처차장(차관)을 비롯한 유해봉환단 60여명(기자단 15명 포함),박은식선생의 손자 박유철씨(55) 등 유족대표 5명,황병태 중국대사,강삼재·장기욱의원 등과 현지교포까지 포함해 2백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임정수립 74년만에 선열의 넋이 조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데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었고 눈에는 계속 이슬이 맺혔다.
○…천묘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고인에 대한 묵념,약력보고,추모사,현화 및 분향,유족대표 박유철씨의 예사순으로 30분간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없이 진행돼 아쉬움을 주었다.
이충길단장은 추모사를 통해 『임들은 이곳 이역땅에서 동가식 서가숙,풍찬노숙의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시다가 끝내 조국을 그리워하던 마음의 한을 이곳 이역의 하늘아래 묻으셨다』면서 『국난으로 점철된 생애는 조국을 잃고 암흑속에 시달리더 우리 겨레에 귀중한 교훈과 함께 광복에 대한 희망의 불꽃을 밝혀주셨다』고 강조.
이 단장은 이어 『못다푼 광복의 한을 고국에서 푸소서』라고 선열들의 넋을 달래고 중국정부와 국민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부언.
○…파묘작업은 3일 미리 도착한 유족대표와 윤해중 상해주재 한국총영사 등이 참석,가랑비가 뿌리는 가운데 흰 가운을 입은 중국인 인부들이 묘석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
유족대표들은 임정수립 74년만에 유해를 모시게된 한이 복받친 듯 목이 메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 모습. 발굴된 유골은 흰종이와 삼베가 깔린 목관에 모셔졌으며 목관은 불은 천이 덮여 만국공묘에서 자동차로 20∼30 분거리인 화장장 「용화○의관」에서 화장됐다.
○…4일 오전 8시30분부터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2시간가량 진행된 파묘식에서는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의 순으로 길이 80㎝·폭40㎝의 유골항아리가 발견됐으나 진흙과 빗물이 뒤범벅된 채여서 유족들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다.
박은식선생의 유골은 하나하나 발견됐으나 두개골부분은 바스러진채 몇점조각으로만 거두어졌으며,신규식선생의 경우 유골항아리에 세개의 구멍이 뚫린 덮개가 그런대로 잘 덮인 상태로 발굴됐다.
그러나 노백린선생의 유골항아리는 깨진 채 발견됐으며 김인전·안태국선생의 유해를 담은 항아리는 덮개가 없었고,선열들의 유해는 오랜 풍상으로 모두 시꺼멓게 변색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날 박은식선생 등 3분의 유해는 지표에서 30㎝가량 파들어갔을때 항아리가 발굴됐으나 김인전·안태국선생의 유골항아리는 깊이 1m정도를 팠는데도 발견되지 않아 참석자들이 한때 애를 태우기도 했다.
박은식선생의 며느리 최윤신여사(77)는 아들 박유철씨의 손을 붙들고 『이제야 8년전 숨진 남편의 유언을 이루었다』며 눈물을 흘렸으며 『뼈 한조각이라도 잃어서는 안된다』며 인부들을 독촉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보훈처는 선열들이 안장됐던 만국공묘 묘자리에 가로40㎝·세로20㎝ 크기의 돌로 된 묘비를 묻고 대신 중국 현지에서 화강암으로 제작한 묘비크기의 표석(푯돌)을 세워 영구히 보존키로 결정.
표석은 한글과 한문으로 「○○○선생묘지,대한민국 이장,1993년 8월5일」 이라고 새겨 한국인 방문객과 중국인들이 이곳이 임정선열들이 묻혔던 곳임을 알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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