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이대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가장 어려울 때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지금 기업들이 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기회를 잡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우리는 그동안 개발성장 과정에서 성공에 도취했고,또 교만했다. 기업이 그러했고 정부는 더욱 그랬다. 우리는 여러차례의 실수를 저질렀다. 성장의 다음에 이어져야할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발전 계기를 포착하지 못했고,또는 눈 앞에서 좋은 기회를 보고도 그냥 떠내려보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경제적 비용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상황은 바로 이러한 기회상실의 결과다.
선진국의 주요 유통시장에서 우리나라 상품처럼 푸대접받고 있는 중진국은 없다. 한국기업이 아무리 애쓴다 하더라도 진열대에 내놓을만한 한국상품이 없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용」으로 들떠있던 한국인으로서는 이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다. 세계시장은 냉혹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가 됐다해서 상품거래에서 특별대우를 해주지는 않는다. 국제경쟁력은 좋은 품질과 가격·서비스 등이 잘 어울려야 실력대로 판가름나고 실력대로 이익을 거둔다.
주요 그룹들이 해외 전략회의 등을 통해 세계시장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알찬 성장으로의 기회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 선진국 시장의 진열대에서 한국산이 계속 중국산에 밀리고,산업 경쟁력에서 말레이시아나 칠레에까지 앞자리를 넘겨준 현실에서 기업이 뛰지 않고서는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다. 그들은 사정에서부터 맨 밑에 있는 생산현장의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불량라인은 뜯어고치고 시간당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거듭 논의하고 있다. 사고방식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모든 것이 국제화되지 않으면 수출이 불가능하다.
이제 변해야할 조직은 정부다.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똑같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세계시장에서 불안한 항해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건전한 기업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각종 행정규제는 보다 실질적으로 완화되어야 한다. 선진국이건,중진국이건 모든 나라의 경제정책은 효율성을 제1로 한 과감한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같은 흐름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기업의 사업 기회를 더욱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다 역동성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팀 전체가 크게 바뀌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법률과 규정은 국제적 규범에 맞게 고쳐져야 하고,이를 운용하는 조직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하드와 소프트의 동시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국력신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물자가 왕래하는 도로와 항만·비행장 등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상품이 경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이 부문의 하드와 소프트개발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는 정부가 당장 제시해야 할 현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