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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뉴질랜드 피오르드 랜드|빙하로 빚어낸 신의 조각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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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피오르드랜드」는 해안협곡·호수와 눈 덮인 산, 거대한 상록수 숲을 다듬어 신이 빚어낸「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는 이 작품을 1만5천년 전 「빙하」라는 조각도로 완성해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1백20ha에 이르는 이 나라 서남부의 이 지역을 신의 조각품으로 비유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빙하시대, 수천m 두께의 얼음 덩어리가 피오르드 지역에 쌓여있었다. 덩어리는 서서히 녹으면서 바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빙하는 산을 만들고 길을 냈다.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스쳐지나간 자취에 빗물과 얼음 녹은 물, 남태평양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호수와 피오르드 해안이 형성됐다.
관목·양치류 식물이 불모의 바위를 뒤덮고 연 강수량 5천∼8천mm의 세례를 방아 무성한 삼림이 만들어졌다.

<호수같이 수면 잔잔>
피오르드랜드는 이 지역 여행의 베이스캠프격인 테 아나우라는 소도시를 한쪽 끝으로 광활한 「테아나우 호수」 「마나포리 호수」가 양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호수 건너편 끝에서 각각 출발하는 54, 12km의 숲 속 트래킹 코스를 통과하면 전형적인 피오르드식 해안협곡인 「밀포드사운드」와 「다우트풀사우드」가 홀연 나타나 여행객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밀포드사운드는 타스만해가 파고 들어간 이 지역 14개 해안협곡 중 가장 웅장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타스만해로 이어진 16km의 길고 좁은 계곡의 수면은 호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잔잔하다.
밀포드 헤이븐(밀포드사운드의 유람선)호의 항해 도중 평석 위에서 떼지어 오수를 즐기는 물개를 발견하고는 이 물이 바닷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한다.
밀포드사운드에 들어서면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고 산과 바위는 한없이 커진다. 넓어야 4km(가장 좁은 폭은 1· 6km)밖에 안 되는 이 협곡을 따라 지금 금방 물에서 솟아오른 것 같은 장대한 산과 수직암벽들이 끝없이 이어져 여행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어느 산봉우리 할 것 없이 순백의 만년설을 지붕처럼 이고 있는 데다 중턱부터는 하얗게 부서지는 수백개의 힘찬 폭포수가 곧 쏟아져 내릴 듯 하고 산 전체에 밀생한 너도밤나무(beech) 등으로 그 안을 헤아릴 수 없는 정글을 연상시킨다.
봉우리들의 왕인 「마이터 피크」(Mitre Peak)는 해발 1천6백95m로 바다에서 직접 솟은 산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리산의 거봉들이 내가 떠있는 수면 바로 옆의 좌우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밀포드사운드의 「경외로움」이 설명될까.
연중 쏟아지는 비로 생긴 철도 레일 모양의 「나무사태」흔적이 바위 여기저기에 나타나 생태학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봉우리마다 만년설>
타스만해안에서 회항한 유람선이 출발지인 밀포드로 돌아오는 도중 대여섯 마리의 돌고래 떼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꼬리만 살짝 드러내다 근처로 접근하니 몸 전체를 공중으로 한 두 번 떠올리는 야생 돌고래 쇼를 연출한 뒤 쏜살같이 내뺀다.
운이 따라야 볼 수 있는 이 돌고래들을 배가 속력을 내 바짝 뒤쫓고 여행객들은 이물 난간에 기대 바로 물밑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밀포드사운드는 그 자체의 경관과 함께 테아나우에서 그곳까지 이르는 밀포드트랙의 뛰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이름나있다.
테아나우호수를 배로 건너3박4일 여정(54km)으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지만 일정이 바쁜 관광객들은 1백19km의 도로를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장 뉴질랜드적」인 풍치를 맛보게 된다.
호수에 점점이 떠있는 수상비행기와 요트, 드넓은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저 멀리 남알프스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과 그 사이 펼쳐진 푸른 목초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양들이 풀을 뜯는 평화스런 광경.
고원에 올라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로 접어든다.
때로는 잣나무같이 미끈한 수십m 높이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는가 하면 붉고 노랗고 파란 고사리 종류의 아열대식물들이 추운 겨울에도(뉴질랜드는 남반부에 위치해 우리와 계절이 반대다)현란하게 피어있다. 숲길이 잠시 끊어지는 아래로 눈 녹은 강물이 뱀처럼 구불구불 느리게 흐르고 일곱 가지 빛깔을 가진 「레인보 송어」가 뛰놀고 있다.
다우트풀사운드는 타스만해까지 40km나 되는 길고 대단히 복잡한 협곡이다.
밀포드사운드가 장쾌·웅장하고 우람한 남성적인 분위기로 사람을 압도한다면 다우트풀사운드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동양적인 분위기로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같은 빙하시기의 얼음 덩어리가 조각한 협곡이지만 이곳은 바위의 모양이나 산세가 곡선적이고 부드럽다.
어떤 이유인지 물색이 옥빛을 내고 물 속에 또 하나의 산과 나무와 바위가 있다.
물이 그만큼 맑아 뭍의 온갖 자연들을 실재 그대로, 아니면 그 이상으로 선명하게 비추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우트풀사운드에는 「거울 나라」(Mirror World)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돌섬은 펭귄서식지>
뉴질랜드를 발견한 제임스쿡 선장은 1773년 협곡을 따라 항해하면서 이곳이 하도 험하고 괴기할 정도로 신비로워 『과연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doudtful)』고 해 「다우트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유람선은 타스만해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옆으로 비껴 들어간 「홀아암」이라는 작은 계곡까지 10km 정도 항해한다.
타스만해 쪽과 홀아암 계곡이 갈라지는 곳엔 그 강력한 빙하도 분쇄하지 못한 「롤라」라는 조그마한 돌 섬이 연록색 관목에 덮여 있는데 펭귄의 집단 서식지라고 한다. 잠시 스쳐 가는 뱃길이라 그들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알파벳 「U자」모양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피오르드식 암벽을 지나 홀아암 끝 부분에 오니 선장이 『여러분은 지금부터 다우트풀사운드가 보내는 「침묵의 소리」를 들으시게 됩니다』라며 5분간 배의 기관마저 꺼버렸다.
설산과 폭포, 수직바위의 이끼, 숲으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 침묵의 소리는 이 모든 것을 거울처럼 비춰내는 옥색 수면 아래에서도 들려왔다.
다우트풀사운드는 이 나라에서 가장 수심이 깊고 화려한 마나포리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 12km에 이르는 산길을 지나면 만나게 된다. 이 숲길은「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로 선전되고 있는데 「레인 포리스트」(Rain Forest)라고 불린다. 【피오르드랜드=장갑진·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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