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가면』『북회귀선』『불 좀…』-관객 연일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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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근친상간, 동성연애, 폭력적 정치권력의 폭로 등-.
권위주의시대에는 공연을 시도한 사실만 가지고도 저항적으로 비쳐졌던 시대적 금기사항을 정면으로 다룬 연극 작품들이 한창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폭력을 암시한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과 20세기 성문학의 대가인 헨리 밀러의 정부이자 그의 아내와도 동성애를 나눈 아나이 닌의 이야기를 담은 『북회귀선』에 연일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이밖에도 성을 빗댄 야한 대사들이 거침없이 오가며 여성연기자의 상반신을 드러내는 연기쯤은 예사로 벌어지는 『불 좀 꺼주세요』나 『얼리걸』『피고지고 피고지고』등도 화제속에 장기공연 혹은 앙코르공연중이다. 또 어린아이들이 성인남녀를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아 화제가 됐던 『0.917』도 10년만에 재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연극계 일부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성적 호기심을 부추겨 흥행수익만을 노리는 「벗기기 연극」「음담패설류 연극」이란 비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는 그동안 경직된 사회분위기에 짓눌려 제약돼왔던 무대위의 표현 자유들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불의 가면』과 함께 『0.917』의 재공연 무대도 꾸미고 있는 연출가 채윤일씨는 『답답하기만 했던 무대표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데 연극평론가 윤호진씨 역시 최근의 연극계 모습에 대해 『다분히 군사정권 아래에서 제약받았던 표현자유의 폭을 스스로 넓히려는 노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성을 떠나 성행위 연기나 성적 대사등이 줄거리에 관계없이 삽입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최근 작품들은 성 그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영역 확보라는 긍정적시 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씨는 또 『연극적 특성이 강한 정통극이 제대로 육성된다면 이들 작품의 폭주는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극계에서는 흥행을 보장하는 성을 주제로 담은 작품들이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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