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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한나라 대전 합동연설회서 네 후보 만나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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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는 과정이다(Democracy is Process). 민주라는 실체가 있어서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민주를 만들어낸다. 당 경선도 대선 과정의 한 일부로서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민주 체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8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합동연설회에 가보았다. 나 자신이 민주를 생산하는 그 과정의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흔히 한나라당 하면 보수당이라고 하는 단조로운 색깔로 칠해버리게 마련이고, 그들 유세도 인신공격이나 일삼는 자기들만의 유치한 게임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 현장은 질서가 있었고 메시지의 명료한 전달이 오갔으며 다양한 가치관이 교차하는 매우 훌륭한 언어의 심포지엄이었다. 그리고 시대정신의 대세를 거스르는 꼴보수의 편벽한 언사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 역사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민주의 고지를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다는 신념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나는 현장에서 그 긴박한 틈새들을 틈타 네 후보와 모두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이례적인 현장 인터뷰는 매우 특이한 의미를 지닌다. 남북 정상회담 발표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을 만난 순서대로 싣는다.

◆박근혜 후보(오후 1시 55분)

"꼴보수 언사 없는 다양한 가치관 경연 이곳이 민주 생산 현장"

내가 유세 직전 본부장실에서 만난 박 후보의 모습은 이전에 내가 만났던 박근혜가 아니었다. 자신감이 넘쳤으며 목소리는 차분했고 정확했고 카리스마적 힘을 느끼게 만들었다. 경선 과정을 통하여 엄청 단련된 리더의 모습이었다.

- 건강하십니까?

"버거운 일정을 소화해 내는 몸의 단련이 소리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까만 복장 스타일이 너무 멋있으시네요."

- 남북 정상회담 반대하십니까?

"평화정착은 우리 민족의 숙원입니다. 반대하지 않아요. 단 핵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는 전제하에서만 용납되는 것이죠."

- 김 위원장도 만나보셨는데, 정상회담이 잘 되겠지요?

"김 위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부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접근하느냐가 중요하죠. 의제와 절차가 투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동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경선 과정에 대한 비판도 많은데.

"제대로 된 경선은 사실상 처음 하는 것이라 미숙한 면이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꿈을 펼치는 데 불가결한 과정입니다. 두 번 실패했기 때문에 세 번 실패는 있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좀 후보들을 경직되게 만들 수는 있지요."

- 대운하 작전으로 747 꿈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신념은?

"전 이 후보와 미래에 대한 구상이 전혀 다릅니다. 19세기 식 토목공사로써 21세기를 리드한다는 발상은 도무지 어불성설입니다. 21세기 국정의 근간은 교육과 과학기술입니다. 토목공사에 쏟을 돈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추상적이지만 창조적인 국력에 쏟아야만 우리 민족의 경쟁력과 희망이 있습니다. 개발시대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토목공사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지식기반사회를 만들어 훌륭한 인재들이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게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노골적으로 까시는군요.

"토목공사 벌이겠다. 나를 따라와라! 그것보다는 기업인이 신나게 활약할 수 있는, 규제가 최소화된 법질서, 교육.과학기술 투자가 더 중요하죠."

이날 박 후보의 연설은 행정복합도시를 추진해온 자신의 신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전이라는 지역성에 충실한 매우 강렬한 언어를 또박또박 쏟아부었다.

◆원희룡 후보(4시 20분)

정직하게 말하자면 난 원 후보를 잘 몰랐다. 그러나 연설장에서 그를 발견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가 쏟아내는 말들은 도저히 한나라당이라는 상식적 이미지와는 부합될 수 없는 매우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언어들이었다. 그런데 그 언어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일절 야유도 없었다. 그를 지지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순결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연설 직후 상황실에서 그를 잡아냈다.

-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되었는데?

"당연히 찬성이고 찬성해야 하고 찬성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정상회담은 계속해야만 하는 당위의 시대로 역사는 흘러갈 것이 아닌가? 시시한 꼬리표는 붙이지 말자! 한민족이 만나는 것이 뭐가 나쁘냐? 만남이 정례화되고 신념이 쌓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비판적 시각도 강한데?

"노 대통령은 정파적 입장을 초월하여 국가와 국민의 통합에만 진실한 열정을 쏟으라."

-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면 결국 한나라당이 대선에 불리할 텐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 현실을 거부하면 더 불리해질 뿐이다. 그 현실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남북문제에 관하여 전향적 의지를 선포한 한나라당이 아닌가? 가장 무서운 것은 노 대통령 세력만이 평화 세력이고 한나라당은 전쟁 세력이라는 인상을 주어 한나라당의 시대적 존재가치를 궤멸시키는 흑색선전이다. "

- 그대가 마이너리티라는 것이 안타깝다.

"당내 음식물 쓰레기를 치워야지 꼬이는 파리를 잡으려고만 하면 대선에 반드시 실패한다. 반공에 기대어 이데올로기 장사나 해먹던 시대는 지났다. 기득권의 향수를 버려야 한다. 아이도 성숙하면 집을 떠난다. 이제는 우리가 북한을 한 동포로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 두 후보를 평한다면?

"이명박 후보는 추진력이 있지만 자기의 성공신화에 너무 갇혀 있다. 새마을운동을 21세기에 펼쳐서는 안 된다. 박근혜 후보는 소신과 안정감이 있지만 너무 고집스러워서 지도자로서는 폭이 좁다. 절박한 삶의 실체로 와닿는 사고의 폭과 유연성이 아쉽다. 보수는 진보의 이슈를 선취해야 하고 진보는 보수의 이슈를 선취해야만 우리 민족의 희망이 있다."

◆이명박 후보(4시 40분)

이 후보는 만나보면 매우 인간적이다. 그리고 최고경영자(CEO)적인 합리성이 몸에 배어 고집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사실 그는 포장이 잘못되어 손해를 보는 편이다. 참모들이 좀 더 머리를 써야 할 것 같다. 그는 지지자들의 환호에 감동하여 늦게까지 행사장에서 악수하고 있었다. 난 재빠르게 그의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대전에서 천안까지 같이 갔다. 학교선배로서 친구로서.

"와 그렇게 날 까대노?"

- 대운하를 한다니까 그렇지. 지금 우리나라가 겨우 운하 팔 시대인가? 걱정되어 충고하면 받아야지. 물류는 운하 안 파도 더 효율적으로 해결될 방법이 많고 국토농간은 환경만 악화시킨다.

"물류량은 급증할 게 뻔하고 환경문제에도 크게 도움될 텐데… 반대하는 사람들 소리만 들으니 그렇지. 하여튼 민자(民資)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니야. 내가 대통령 되면 민자 유치의 상황을 보고 검토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환경부나 건교부의 세밀한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정부예산으로는 절대 공사하지 않는다."

-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소견은?

"비핵화 문제를 해결한다면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빌미로 대선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을 개방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10년 안에 북한이 GNP 3000불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때가 되면 가정에 세탁기.자동차가 들어가기 시작하고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품 주는 식으로 도와주면 대세를 그르친다. 그들이 자립(自立)하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기업 투자, 일본보상금, 세계은행 등의 자금을 투입하여 일자리 마련하고 교육을 혁신하고 동포애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프라이드를 주어야 한다. 북한은 중국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 너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발상에 매달리는 것 아닌가?

"사유화된 버스노선을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준 나의 교통정책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컸기 때문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강자는 멋있게 경쟁하게 만들고 약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 왜 그렇게 멋있는 정책을 많이 발표하지 않나? 운하는 그 많은 정책의 하나가 되어야지.

"내가 정책을 발표해도 언론이 날 대운하나 신변잡사로만 몰고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나의 진보적 성향을 묵살하는 사람들이 박 캠프에 붙어 날 공격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날 지지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절규다. 경제정책이 워낙 빈곤했다. 경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무다. 난 당내 기반이 약하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다. 기업인은 체질적으로 남을 비난할 줄 모른다. 나의 진정성을 곡해 말라."

◆홍준표 후보(6시 12분)

홍 후보는 행사장을 일찍 떴기 때문에 전화로만 통화가 가능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의 목표는 8월 19일이 아니라 12월 19일이다. 네거티브를 중지해야 한다. 필승의 대의를 위해 쩨쩨한 마음을 버려라."

- 두 후보를 평한다면?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우리나라가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원칙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나 도올은 말한다. 국민들이여! 한나라당 경선에 보다 깊은 애정을 보여라! 우리 역사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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