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제공과 특혜는 정비례"|주요 선진국 수수관행을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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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국에선 지금 보수당의 정치자금 문제로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럽다.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당은 모두 1천9백만파운드(미화 2천8백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금해 사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결산보고서에서 보수당에 흘러간 젓으로 나타난 정치자금은 3천7백만파운드(5천5백만달러)에 달했다. 그 차액은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제공한 탓에 공개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 영국 정치자금 파문의 줄거리다. 정치자금 문제는 영국에서만이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모두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이들은 정치자금 제도를 개혁하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요 국들의 정치자금 현황을 살펴보자.
최근 검찰의 마니폴리테(깨끗한 손)운동으로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구속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자금과 반대급부 사이에는 정확한 비례관계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취나 마찬가지">
컴퓨터와 사무기기를 생산하는 올리베티사 대표 카를로 데베네데티는 최근 정치자금을 기부하지 않고서는 정부로부터 납품계약을 따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이 같은 관행은 『협박에 의한 갈취행위와 마찬가지』라고 불평했다.
이처럼 정치체제의 일부로 구조화된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따라 이탈리아 기업들이 정치인들에게 지불하는 각종 뇌물과 리베이트는 연간 50조 내지 60조리라(33억∼39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도 최근 정치자금 제도의 개혁논의가 한창이다. 미국에선 지난 20여년간 이른바 정치행동 위원회라고 불리는 각종 이익단체들이 정치자금을 모아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기부하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이 자금은 정치인이 개인자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융통성 많은 「소프트 머니」라는 것이 큰 특징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익단체의 정치자금 기부행위를 완전히 금지하기 위한 법안을 제안, 이 법안은 이미 상원을 통과한 바 있다.

<취임 후 대사 등 임명>
미국은 엽관제도가 정착돼 특징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른바 「1백인 팀」의 회원 중 12명을 대사로 임명했다. 1백인 팀은 공화당에 10만달러 이상씩을 기부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도 민주당의 정치자금 모금에 큰 역할을 하고 스스로도 7만5천달러를 기부한 사교계의 여왕 파멜라 해리먼을 프랑스 주재대사로 임명한 바 있다.
정치자금 모금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들 중에선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는 곧 금권에 의한 파벌정치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일본에선 각종 합법·불법의 정치자금 수수가 활발하다.
경단련 등 주요 경제단체가 기업들로부터 모금해 합법적으로 자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고,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구속된 록히드 사건,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를 구속시킨 도쿄사가와규빈 사건에서 보듯 반대급부를 노린 불법 정치자금 관행도 뿌리깊다.

<관급공사 흑막 많아>
정부관리나 정당들의 부패가 가장 큰 정치문제가 되고 있는 스페인에서도 정치자금은 반대급부를 노려 은밀하게 수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관급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건설업체들의 정치자금 제공은 최근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의 전자회사 지멘스사가 수도 마드리드와 지난해 세계박람회가 열린 세비야 사이 고속전철 전기부문공사를 수주한 대가로 스페인집권 사회당과 협의를 거쳐 8억2천5백만페세타(6천3백만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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