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 5개년계획의 출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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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경제 1백일계획이 종료되고 앞으로 5년간 한국경제가 움직여 갈 기본 구도를 담을 신경제 5개년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동안 분야별로 토의된 내용이 이제 종합되고 확정되었기 때문에 정책의 기본 방향과 정책간의 관계 등 미래에의 불안감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경제 1백일계획의 성과가 기대이하로 나타난 이유를 곰곰 반성해보고 다시 한번 물가안정을 위한 노력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계획을 평가하기에 앞서 민간기업이 앞으로 한국경제의 장래를 믿고,기업경영을 혁신하고,투자와 기술 및 인력개발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삼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임기중 반드시 실시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정치헌금을 받지 않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스스로 단절했음도 다시 천명했다. 그가 보는 신경제관은 여기서 잘 나타나고 있다. 부정부패의 척결과 깨끗한 공직사회의 구현이 건강한 경제를 만드는 길이고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같은 철학이 경제계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가다. 금융실명제의 실시와 효율 및 공정을 보장하는 제도개혁과 규제완화라는 총론적인 입장은 표명되었지만 실제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원래의 7차5개년계획 당시 부처별로 작성된 정책이 목록만 재조정되어 들어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의 설정이 불분명하고 정부 의도를 이해하는데도 혼란을 주고 있다. 예컨대 7차 5개년계획과 신경제 5개년계획을 구별짓는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구상을 둘러싼 차이다. 두 계획 모두 정부의 지시와 통제위주 경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는 일치한다. 그러나 대안으로서 7차계획이 민간주도 운영을 강조했다면 신경계획은 정부와 민간이 같이 참여한다는 표현을 통해 그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정부와 기업간의 새로운 관계와 역할조정 등이 분명치 않다. 신경제 추진팀의 의도가 영미식의 개인주의적 혹은 시장중심적 경제운용이 아닌 독일이나 일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위한 공동체적 의식개혁의 중요성이 5개년계획의 중심과제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도 지적되어야 한다. 의식개혁과 제도개혁 및 질서의 정비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경제가 새로운 경제질서의 한 대안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큰 이유는 새로울 수 없는 경제문제에 새롭다는 접두어를 달았다는 데 있다. 앞으로 경제운용의 기본은 효율적인 구조를 만드는데 있는만큼 우선적인 정책과제는 물가안정과 경제규범의 확립에 두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창의를 기본으로 하다보면 집단이기주의의 표출과 직면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문제해결의 원칙은 규범과 제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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