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무덤』미서 출간|소 붕괴과정 한눈에 본다|렘니크 전 WP지 기자 현장 취재 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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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소련 붕괴과정 보도 경쟁에서 가장 맥을 잘 짚어 낸 기자로 명성을 날렸던 데이비드 렘니크 전 워싱턴포스트지 모스크바 특파원(현재 뉴요커지 소속)이 당시 취재내용을 정리『레닌의 무덤』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권력층 부패·우랄 지역의 방사능오염·시베리아 수용소 실태 등 말기적 병리현상 뿐 아니라 소련 붕괴를 전후한 지적 역사까지 일목 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흐름을 이어가는 사건 하나 하나마다 핵심 인물의 현장 인터뷰, 사실 확인으로 규명된 내용들은 그의 부지런한 발과 탁월한 안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사건의 주역들도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혼돈의 시대를 명쾌하게 정리, 저널리스트와 역사가 모두에게 기술방식의 모법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책을 극찬했다.
렘니크 기자는 소련의 붕괴가 페레스트로이카(사회주의 재편) 보다는 글라스노스트(현실의 직시 내지 공개)로부터 비롯된 젓으로 로고 있다. 글라스노스트의 결과 베일에 가려졌던 역사의 빈칸이 채워지면서 공산당이 과거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고 이로 인해 현재 및 미래도 통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레닌의 무덤』에서 뮤초바초프서 선택한 것은 소련사회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고개숙인 채 입 다물어 온 지식인·여론 주도층이었다』며『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스탈린·KGB·레닌의 죄악 등 성역이 거침없이 허물어졌다』고 말했다.
곧이어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한 지식인의 과거 허물기가 89 시베리아 광부들의 파업을 계기로 경제,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화살은 고르바초프를 겨누게 됐다.
광산노동자·도시지식인·비 러시아공화국 민족주의자들의 방정부연대 강화로 고르바초프의 추종 세력들에 독립적 정치활동 공간이 열리면서 고르바초프의 개혁 성향은 빛이 바랬다. 위기의식을 느낀 고르바초프는 군·공산당·KGB 등 보수적 아첨꾼들에게 의지하려 했으나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며 등을 돌렸다.
옐친이 이끄는 반 쿠데타에 가담한 시민들 대부분은『우려가 뽑은 옐친을 지키려고 모였을 뿐이다. 고르비는 실정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있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레닌의 무덤』은 렘니크의 첫 저술서이지만 명쾌한 내용 못지 않게 모범적인 문체로도 주목받고 있다. 꾸밈말이 극도로 제한되고 초지일관 침착성을 잃지 않는 렘니크의 서술능력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제국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랜덤하우스사가 5백76쪽으로 출판했으며 가격은 25달러.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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