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자에 약한 군관계자들/안성규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기밀유출 혐의로 구속된 국방정보본부의 고영철소령이 밝힌 범행동기는 정말 어이가 없다.
고 소령은 『동생의 진급청탁을 위해 자료를 넘겨줬다』고 말한 것으로 검찰은 발표했다. 그의 말을 뒤집으면 일본특파원이 동생의 진급청탁에 입김을 넣을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외국특파원이 무슨 힘이 있어 인사에까지 관여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할수도 있지만 슬프게도 그것이 현실의 한 단면인 것을 부인 못한다. 3공화국 이후 군사정권이 이어지면서 우리의 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 외국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례들이 왕왕 있어왔다.
예를들어 김대중씨 납치사건이라든가 광주사태같은 정치현안들이 그랬고,주한미군 철수니 무기구입이니 하는 국방 현안들도 그랬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작전계획 같은 것도 우리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런 문제들을 군기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성역처럼 보호됐었고 그것을 다루는 국방당국자들도 기자들의 물음에 대해 『비밀』이라는 한마디로 엄격하게 접근을 제한했다. 북한과의 대치상황,막강한 군의 위상이 이런 것을 가능케 했다.
만일 그들이 같은 원칙을 외국언론에도 적용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기밀유출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있는 군당국자들일수록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언론과의 대화보다 외국 기자,특히 일본·미국 기자들에게 관대했던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들 기자들은 높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고 하다보면 노골적인 인사청탁은 아니더라도 『누가 괜찮더라』 『누가 쓸만하더라』라는 식의 말을 던질수도 있을 것이다.
군고위층과 자주 만나는 외국기자들을 군의 하급자들이 존중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동생진급을 위해…』라는 말은 그런 잘못된 군고위층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기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위해 여러계층의 사람과 두루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특파원쯤 되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일본특파원이 국방기밀을 취재했던 것에 대해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 점이 국방당국자들이 저간에 보인 행태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국내언론에 높은 벽을 치고 외국기자들에게는 관대해왔던 국방 당국자들에게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태도를 돌이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