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보수정치 “물갈이”예고/총선 소용돌이 일 정국의 앞날(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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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잇단 스캔들에 총리 정치력도 부재/“금권정치 타파” 개혁실현은 의문시
최근 일본정국은 지난 55년 보수통합으로 자민당정권이 출범한 이래 크게 동요하고 있다. 미야자와(궁택)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 통고는 중의원 해산을 초래,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총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편을 중심으로 출발하였던 정치개혁논의는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자민당 내분→내각불신임→중의원해산→총선거라고 하는 숨가쁜 정치 일정을 오는 9월30일 이전에 모두 매듭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정치개혁은 지난해 가을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스캔들에서 비롯,금권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우선 국회의원 선거구 재조정문제로 출발하였다. 지금까지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어 여야가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 왔던 것이다.
이번의 정치개혁바람은 단기적으로 보면 리쿠르트 스캔들·사가와규빈 스캔들·가네마루 오직사건 등 일련의 정치 스캔들에서 출발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오직사건들의 휴유증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55년 이후 거의 40년간 존속해온 자민당정권이 내포하고 있던 문제점·부작용이 동시 발생적으로 표출된 「정치현상」이라는 인식이 올바른 시각이라고 하겠다.
행정개혁·교육개혁과 아울러 자민당정권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부상되어온 정치개혁문제는 단순한 선거제도 개혁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 보수정치의 정치부패를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문제도 포함하고 있었다.
미야자와내각은 이러한 정치개혁의 이론과 실제를 정합시키는데 실패하고 불신임안 가결→국회해산이라는 결과로 끝을 내고 말았다.
미야자와총리는 불신임안 가결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내각 불신임이라는 불명예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중의원 해산을 먼저 시도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적극조치를 취할만한 정치력을 이미 상실하고 말았다.
현재 자민당 정권은 집권 38년만에 단독정권의 종막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개혁추진파인 하타(우전)파의 반발을 사정에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엄청난 정치위기를 초래하였으며,총선거 승리 가능성도 희박하다.
미야자와총리는 나루히토(덕인) 왕세자 결혼식의 축제분위기를 연장시켜 동경도 의회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서방선진 7개국(G7) 동경정상회담에서의 성공적 수행을 기초로 하여 오는 9월말 총리재선을 기도해왔으나 지금으로선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정국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이와 같은 정치격동을 어떠한 시각에서 봐야할 것인가.
첫째,38년에 걸친 자민당정권의 만성적인 문제점과 장기집권에 의한 정치부패가 지난해 각종 정치스캔들로 표면화됐고,그 결과 정치개혁마저 실패한 냉엄한 「정치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미야자와총리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 결여를 간과할 수 없다. 자민당 내에선 개혁추진파와 개혁신중파가 장기간 대립해왔으나 미야자와 총리는 하타와 오자와(소택)를 중심으로 한 추진파를 설득·포용·조정할만한 리더십이 부족,권력기반을 약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자민당정권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실망과 아쉬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정치적 격동은 정치개혁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교훈과 시사를 주고 있다.
최근 국내 정계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의 중선거구제는 결국 금권정치의 온상이요,정치부패의 동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정권이 지금 당장 무너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의원의 자민당의석 2백75석중 50석정도의 개혁파의 탈당에 의해 미야자와정권이 위기에 봉착한 것에 불과하다. 설혹 이번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다 해도 합종연형의 정치게임에 따라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연립정권등장 가능성이 예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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