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약점 눈감는 일 언론/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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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일본 언론에는 개혁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각광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은 수구세력으로 마치 악의 상징처럼 취급되고 있다. 야당이 제안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 불신임결의안에 찬동,내각을 무너뜨린 하타(우전)파는 영웅처럼 취급되고 있다. 언론의 초점은 이들이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가느냐로 시종하고 있다.
일본언론이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무언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호기로 보고 이를 부채질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언론은 그러나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위해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개혁을 원하는 것인지,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선거전략일 뿐인지를 가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같은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원래 개혁은 자민당부패,파벌정치,정치자금 스캔들 등 돈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비롯됐다.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로부터 비롯된 정치개혁 논의는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의 구속으로 극대화됐다. 정치인의 부패는 파벌정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인식됐다. 선거제도개혁이 곧 정치개혁이 된것이다. 정치자금규정법 강화나 정치윤리법 등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자민당이나 사회당 등 야당은 선거제도를 개혁하되 자기당에 유리한 것을 서로 당론으로 내놓고 이를 정치개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차이점은 야당이 자기네 주장을 양보한 타협안을 내놨는데 비해 자민당은 당초의 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따라서 최근 정국은 자민당내 권력투쟁의 결과일뿐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간사장과 하타파의 실질적인 지도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전 간사장간의 피나는 권력투쟁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 가네마루 밑에서 황태자로 자민당을 좌지우지했던 오자와는 가네마루 몰락으로 다케시타(죽하)파가 분열되면서 시련의 나날이 계속됐다. 오자와는 이에따라 일단 선거제도를 개혁한뒤 총선을 거쳐 자파세력을 불리고 분당으로 간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그러나 그는 밀실거래의 검은 이미지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않고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 대장상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언론은 단지 하타파의 개혁주장만 보도할뿐 뒤에 있는 오자와나 하타가 만악의 상징인 가네마루 밑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눈을 감고 있다. 이들이 과연 개혁파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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