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지는 전경련­경총/김동균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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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 출범이후 몇가지 「사건」을 겪으며 미묘해지기 시작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간의 관계가 최근 완전히 틀어졌다. 경총은 최근 확산추세인 노사분규의 공동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한 경제5단체장 회의를 29일 열자고 제의했으나 전경련이 일언지하에 이를 거부,결국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전경련측은 『현대그룹 노사문제 하나에 경제단체가 모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경제단체도 전문화되어야 한다』고 불응이유를 밝혔고,경총측은 『현대그룹의 노사분규는 신경제의 성공여부를 가름할 수도 있는 최대의 경제현안』이라며 전경련의 안이한 자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전경련이 경총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일단 절차상의 불만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후 전경련(회장 최종현)·경총(회장 이동찬)의 급격한 위상변화와 이로인한 불편한 관계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경련측은 경제 5단체장들이 지난 5월4일의 회의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모임을 갖지 않기로 묵시적인 합의를 봤는데도 경총이 자기네 소관사항인 노사분규의 확산을 이유로 불쑥 회의를 제의한 데 대해 기분 나빠하고 있다. 게다가 회의의 일정·의제가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미처 통보를 받기도 전에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재계의 본산」 전경련을 요즘 힘이 좀 빠졌다해서 너무 쉽게 다루려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이후 최종현회장과 이동찬회장간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단순 사안이 계속 확대해석되고 있다는 분석도 없지않다. 섬유업에 뿌리를 둔 유사업종 대기업의 총수들이며 제2이동통신 수주과정에서 한바탕 격돌한 뒤 재격돌을 앞두고 있는 등 가뜩이나 가깝기 어려운 사이인데 최 회장은 6공과의 인연 등으로 자꾸 움츠러들고 있는 반면,이 회장은 새 정부들어서면서 공산품가격동결·과장급이상 임금동결 등 잇따른 히트(?)로 점수를 많이 따 결과적으로 두 단체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대기업그룹을 대표하는 전경련과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경총이 본격 임금협상철에 등을 돌린대서야 말이 안된다. 우리의 경제사정은 다분히 감정적 요인이 깔린 두 단체간의 티격태격을 지켜볼만큼 여유가 있는 것 같지않다. 노사화합 이전에 경제계 화합이 더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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