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아닌 언론이 구속된겁니다”/김기평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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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정재헌기자가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는 생각보다 멀었다.
「율곡사업관련 권영해 국방부장관도 출국금지」 보도와 관련,정 기자가 전격 수감된지 하루뒤인 15일 낮 정 기자가 전격 수감된지 하루뒤인 15일 낮 정 기자의 가족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면서 경기도 의왕시소재 서울구치소에서 그를 만났다.
『제가 구속된 것은 제자신이 아닌 언론이 구속된 겁니다.』
아버지 정순용씨(67)·동료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 말을 중앙일보 및 언론계 동료,선·후배 기자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14일 새벽 경북 경주 집에서 급히 상경,아들 걱정에 이날 밤을 뜬눈으로 새운 아버지는 집안 안부·건강상태 등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던중 아들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늘 성실한 아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이 기자로서 뭔가 잘못된 부분을 파헤치려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씨는 아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잃지않아 아버지로서 자랑스럽다』면서 아들의 두손을 꼭 붙잡았다.
정 기자는 자신이 의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낮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밝혔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구속되기 전에도 그렇게 믿었고 지금 역시 그렇다고 믿는 저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떳떳하지 않다면 어떻게 제가 의연할 수 있겠습니까.』
정 기자는 혼자있는 독방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다.
『언론의 보도는 항상 위험성이 따르고 관에서 보도자료라고 언론에 배포하는 내용도 때론 사실과 달라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때문에 오보의 가능성은 늘 있게 돼있고 막상 오보라고 생각될 경우 정정·사과보도를 내보낸다. 이는 언론의 가장 큰 기능인 비판과 책임의식에서 비롯된다. 정정보도 등 나름의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기자를 전격 사법처리 하는 것은 문제다. 이같은 정부의 조치는 1백% 완벽한 기사만을 쓰거나 관제공 또는 관이 확인해주지 않는 내용을 써서는 안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기자들은 흔히 말하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관·사회의 구조적 비리 등 정부 입맛에 맞지않는 기사를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는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로 볼 수밖에 없다.』
정 기자의 구속은 가족들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서울구치소의 거리만큼이나 사태를 어렵게 끌어가고 있다. 굳이 가까운 길을 외면한 정부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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