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청첩장 금지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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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은 결혼식 청첩장과 경조사 때의 화환을 금지하고 분묘의 면적 제한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현행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개정키로 했다. 우리사회에 아직도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허례허식과 과소비적 요인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축소하려는 행정적인 조처는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그대로 남는다.
지난 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래 굴건제복이 없어지고 삼년상이 줄어드는 등 상례와 제례의 절차와 형식이 일부 간소화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때 주춤하는가 싶던 경조사 때의 청첩장과 화환이 곧 다시 성행하고,축하객이나 조문객에 대한 음식 대접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수백년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과 민속화한 관행을 법으로 하루 아침에 없앨 수 없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솔선수범해야 할 공직자나 사회지도층까지도 앞장서서 위법하는 사례마저 우리 주변에선 흔히 볼수 있지 않은가.
특히 결혼식 청첩장의 경우 법규나 행정의 규제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청첩장을 금지하자 「알리는 말씀」 「초대하는 글월」을 사신으로 보내는데는 그 편지봉투를 일일이 뜯어보기 전에야 어떻게 적발할 수 있겠는가. 설혼 적발해낸다 해도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는 상위법인 현행 헌법을 위반하기 때문에 오히려 적발한 쪽이 범법자로 몰리게 돼있는 것이다.
청첩장을 굳이 나쁜 관행으로 절대 금지하려는 시각에도 문제는 업지 않다. 우리는 집안의 길흉사를 알릴만한 사람에게는 알리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생각하며 이에 참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민족이다. 친척이나 이웃과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미풍은 될망정 사회적 폐해로 간주해서 획일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더구나 어느 길흉사나 당한 입장에서는 갑자기 비용이 많이 드는 힘겨운 행사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친지와 이웃이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부담이 되지만 상호부조적인 품앗이도 된다는 점에서 청첩장 자체를 「고지서」로 몰아붙일 일만은 아닌 것이다. 남이 어려울 때는 도와주고,또 내가 어려운 처지일 때는 도움을 받는 것 또한 우리가 지닌 양속이 아니겠는가. 다만 집안의 경조사를 공돈을 무더기로 받아내는 절호의 기회로 삼거나 일확천금을 해보겠다고 노리는 세도가들의 엉뚱한 욕심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목적으로 청첩장을 수백·수천장씩 남발하는 것은 경계하고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당사자의 양식과 양심에 맡길 것이지 법규로 다스릴 일은 못된다. 정부로서는 국민의 양식과 양심을 고취하는 의식개혁에나 힘쓸 것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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