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와 명예훼손」 어디까지 한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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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진국선 악의없으면 처벌 안해/알 권리와 개인명예의 상충이 문제/「완벽한 검증」 요구는 자칫 언론제약
언론자유는 근대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기본권중에서도 가장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어떠한 정치·사회·문화적인 활동도 언론의 자유없이는 이뤄질 수 없으며 공정한 여론형성만이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각국의 역사를 통해 이미 입증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현대사도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확산과정이었다. 독재정권의 탄압과 불의에 맞설 진실을 밝혀내고 보다 많은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주려는 기자들의 노력은 성숙해가는 시민정신과 함께 문민시대를 여는데 크게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비리 사정 선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군의 무기도입과정 비리조사,즉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도 군인사비리와 관련돼 구속된 정용후 전 공군 참모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F16 전투기의 도입과정에서 군수뇌부들을 상대로한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낸 언론의 보도가 출발점이었다.
언론은 감사원의 감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자체 취재를 통해 무기도입과정의 문제점들을 상세히 보도해 왔다.
동화은행 안영모행장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나 슬롯머신 수사에서 검찰 내부의 비호세력을 척결하도록 여론을 환기시킨 일 등은 모두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었다.
언론의 추적과 보도는 흔히 개인의 명예와 상충되곤 한다. 개인의 명예와 프라이버시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중의 하나며 책임있는 언론기관은 그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개인의 명예권이 상충될 경우 우리 언론은 대개 국민의 알권리를 우선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전통은 무엇보다 역대 독재정권이 명예권을 앞세워 언론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고 해온 비극적 역사에 기인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공직자·연예인 등 공인의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경우와 달리 상당한 정도록 제한되어도 마땅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공직자는 사인이 아닌 공인으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그들의 공적인 생활뿐 아니라 사적인 생활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새로 제정된 공직자 윤리법이 재산공개 등 사인에게 요구하지 않은 의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정신이 우리사회에 제도화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익땐 불성립
이같은 공직자와 국민을 대신한 「눈」으로 역할하는 언론은 공직자나 국가 문제를 보도하는데 명예훼손이라는 갈등관계에 빠질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보도가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추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공직자의 명예훼손을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 미국 등 선진민주국가들의 확립된 법정신이다.
설사 보도가 허위일지라도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고 언론이 「실제적 악의」를 갖고 보도하지 않았다면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
60년대 유명한 설리번대 뉴욕타임스 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이 「실제적 악의」는 그후 세계각국에 공직자의 명예훼손에서 보편적 개념이 되었다.
설리번 사건은 또 이 실제적 악의를 명예훼손 보상을 요구하는 측이 입증토록 요구하고 있다.
언론에 검증된 기사만을 요구한다면 사회의 「활발한 토론」을 제약해 결국은 민주주의 기반이 약화된다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즉 언론자유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고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언론보도에 불가피한 어느 정도의 「실수의 영역」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법도 이같은 정신을 담고 있다. 진실보도가 명예를 훼손할 경우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을 인정치않고(형법 301조),허위일 경우도 「비방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다(동 309조).
또 한 판례(대법원판례·61년 10월19일)는 서구의 「실제적 악의」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범의」가 없으면 명예훼손을 인정치않고 있다.
한승헌변호사는 이번 권 장관 사건과 관련해 『중앙일보가 기사를 보도함에 있어 공연히 장관을 음해할 까닭이 없으므로 중앙일보의 보도에 고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고의성은 없다”
따라서 과실범이라 할수 있으며 명예훼손에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처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김동철 전 이대교수는 『공인의 명예훼손은 언론이 이를 고의로 하지않은 사실이 밝혀질 경우 언론사에 사회적 책임을 따질 수 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형사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언론의 자유를 손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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