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수석 오찬서 「잔류」 전격약속/북한­미 고위회담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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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대표,핵보다 「후속회담」 큰 관심/“입장 왜 바꿨나” 물음에 대답회피
4차 미­북한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유보하기로 함으로써 유엔주재 한국대표부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일단 고비를 넘긴것에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
○…북한은 11일 고위급회담 막판에 NPT탈퇴 유보라는 카드를 미국에 제시함으로써 후속 고위급회담과 일부 안보우려사항에 대한 약속을 얻어낸데 만족한 표정.
강석주 북한대표는 4차회담이 시작된 뒤 약 2시간만에 취재진 앞에 나타나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역사적인」 「정치적인」이라는 용어를 되풀이 사용하면서 핵문제보다 미­북한간 대좌에 큰 의미를 부하려고 애썼다.
그는 『앞으로의 회담이 중요하고 귀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기간만큼 NPT탈퇴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앞으로의 고위급회담에 큰 기대를 표시하고,공동 성명문을 가리키며 『이런 문건이 처음으로 나왔다』고 강조.
일부 관측통들은 북한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NPT탈퇴 효력을 일방적으로 일시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힌 공동성명문의 복잡한 내용을 놓고 북한이 미국에 NPT 잔류를 실질적으로 약속했으나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일시 정치는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앞으로의 회담 결과와 국제기구의 공정성에 달려있다』고 설명함으로써 다소 문제점이 남아있음을 시사.
그는 『왜 북한이 입장을 바꾸었느냐』는 질문에는 『잘 안들린다』면서 대답을 피하는 인상을 주었으며 회담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주문에 영어로 『지금까지 좋다』(so far,so good)라고 웃으며 말하고 기자회견을 끝냈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는 이에앞서 평소와는 달리 친절한 목소리로 한국 특파원들의 전화를 받고 『기자회견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등 즐거운 표정.
○…이날의 미­북한간 4차 고위급회담은 기자회견을 갖기위한 형식상의 만남이며 공동합의문은 전날의 3차회담에서 이미 타결된 듯 이날 오후 회담시작 한시간 전부터 북한 대표부측으로부터 합의문 내용이 흘러나왔다.
강 대표부측은 이날 처음으로 보도진의 출입을 허용했으며 기자회견에는 대표부건물 뒤뜰에서 오후 5시부터 6시쯤까지 진행.
○…북한이 NPT탈퇴 유보 입장을 밝힌 것은 양측 수석대표들만이 가진 오찬회담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날 오전회담에서 1,2차회담 때와 거의 같은 입장을 반복해 미국은 회담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으로 기울었으나 미 대표부 부근 플라자호텔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된 갈루치 대표와 강석주대표와의 오찬에서 북한이 「NPT잔류안」을 풀었으며 이때부터 분위기가 급변,오후회담에서는 예정시간을 2시간 이상 넘기며 열띤 협상이 벌어졌다는 것.
갈루치대표는 이날 오전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오후에도 회담이 계속될 것』이라고만 건조하게 말했으나 오찬 뒤에는 『멋진 점심』이었다고 말해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
○…갈루치 미 대표는 3차 회담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유종하대사에게 회담결과를 브리핑할 계획이었으나 회담이 늦어짐에 따를 이를 취소했으며 브리핑을 듣기 위해 미 대표부를 방문한 첸젠(진건) 중국대표부 부대사와 일본대표부의 1등서기관도 브리핑을 듣지 못한채 발길을 돌렸다.
이와관련,외교소식통들은 갈루치대표가 회담직후 관련국들에 협상결과를 설명하지도 않은채 워싱턴으로 간 것은 『북한이 제시한 카드가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미묘하고 곧혹스러운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
미국은 이날 뒤늦게 회담결과 브리핑을 실무자 브리핑으로 대체했다.<뉴욕=이장규특파원>
□북한­미국 핵관계일지
◇92년
▲1월 22일=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양국현안 포괄협의
▲4월 10일=북한,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비준
▲5월10∼16일=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 북한방문
▲9월 22일∼10월 3일=김영남 북한 외교부장 유엔총화참석
◇93년
▲3월 12일=북한,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3월 17일=제30차 미­북한 참사관급 북경접촉
▲3월 19일=제31차 북경접촉
▲5월 5일=제32차 북경접촉
▲5월 10일=제33차 북경접촉,고위회담 개최원칙 합의
▲5월 11일=안보리 대북한 결의안 채택
▲5월 17일=미­북한 고위회담위한 제1차 뉴욕 예비접촉
▲5월 21일=제2차 뉴욕 예비접촉
▲5월 24일=북한,고위회담 개최일시(6월2일) 및 북측대표명단 미국에 공식통고
▲5월 26일=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차관보,북한안보 우려한 해결방안 시사
▲6월 2일=갈루치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외교부 제1부부장을 수석대표로 한 고위회담 유엔본부에서 개최,기본입장 개진
▲6월 4일=제2차 고위회담
▲6월 10일=제3차 고위회담,NPT 잔류문제 등에 상당한 의견접근
▲6월11일=제4차 고위회담,북한 NPT 탈퇴유보와 미 핵위협우려 불식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 발표
◎북한­미 공동성명 전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미 합중국은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정부급 회담을 개최했다.
회담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를 대표하는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과 미 합중국정부를 대표하는 로버트 L 갈루치 국무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참가했다.
양측은 회담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했다. 양측은 핵확산방지 목적에 부합되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한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미 합중국은 다음과 같은 원칙들에 합의하였다.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한다.
▲전면적인 안전보장 장치의 공정한 적용을 포함해 한반도의 비핵화,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상호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
이러한 원칙들에 따라 양국 정부는 정당하고 평등하고 공정한 기초위에서 대화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 만큼 핵확산금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효력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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