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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不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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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가짜라는 멍에로 중국이 요즘 뭇매를 맞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이 그보다 더 나을 건 없다. 엉터리와 가짜가 중국에 비해 더 활개치는 사회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이야 단순한 가짜 상품이 판치는 곳이지만 우리 사회는 가짜 사람이 어엿하게 활동하고 대중은 그에 쉬이 열광한다.

 엉터리와 가짜를 한자로 표현하면 ‘부실(不實)’이겠다. 『좌전(左傳)』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한다. 진(晋)나라 고관 양처보라는 사람이 위(衛)나라를 방문한다. 돌아오는 길에 양처보는 영읍이라는 곳에 들른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싶어 그는 한 여인숙에 들어선다. 그의 신분 때문일까, 아니면 차림새 때문일까. 여관에서 늘 사람을 맞았던 주인은 양처보를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양처보가 떠나던 다음날. 주인은 그를 따라 나선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한참 동안이나 양처보를 따라가던 주인은 어느 날 동행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온다.

 길을 떠났다 느닷없이 돌아온 그를 보고 아내는 의아해한다. “왜 돌아오신 게유?” 이쯤으로 물었을 법하다. 사내의 대답은 이렇다. “그 사람 보기보다 다르더구먼.” 주인이 양처보라는 인물을 묘사한 내용인즉 이렇다. 성정(性情)이 강해 한쪽으로 치우치고, 말이 번드르르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의 결론은 “이런 성격이라면 다른 사람과 쉬이 원한을 맺을 것이어서 복보다는 화가 따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겉은 그럴듯하지만 알맹이는 없다는 뜻의 ‘화이부실(華而不實)’이라는 유명한 성어가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인은 요즘 사회 전반을 가득 메웠던 부실의 흔적을 목격하고 있다. 위조 학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예일대 가짜 박사학위 사건이 물꼬를 트는가 싶더니 유명 TV 인테리어 전문가, 영어 강사, 문화계의 명인마저 가짜 학력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 학위를 만들어 버젓이 행동한 사람보다 이를 채근하고 부추긴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더 불량하다. 학력이나 외모, 요란한 말솜씨에 속절없이 넘어가 급기야는 가짜와 진짜를 변별하지 못하는 속기(俗氣)의 충만함. 한국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영국의 휴대전화 판매원 폴 포츠가 인기다. 못생긴 외모에 별 볼일 없는 경력이었지만 꿈을 이루려 성악에 도전했던 그가 마침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진짜 실력을 향해 매진했던 그의 진실성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울림은 자못 크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