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배지 놀음에 경제 골병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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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멕시코가 1일부터 자동차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한국 등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는 관세율을 20%에서 50%로 높였다고 한다. 미국.유럽연합(EU) 등 협정 체결국에는 무관세 혜택을 주는 대신 미체결국은 사실상 시장 접근을 막겠다는 의미다. 관세가 50%씩 붙어서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인구 1억명, 미주 4위의 자동차 시장은 눈을 뻔히 뜨고 날릴 게 뻔하다. FTA 비준안 연기의 후유증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비준을 놓고 진통을 거듭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FTA 미체결국에는 타이어 수출, 국영기업체 입찰 등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 칠레에서는 한국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20.2%에서 13%대로 떨어졌고, 직물과 무선통신기기 수출도 30% 이상 감소했다. 인도에서는 한국차의 상황이 불리해졌고, FTA를 협의 중인 싱가포르 쪽에서는 '무역으로 먹고사는'한국의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들린다.

FTA는 이미 1백53개국에서 발효 중이다. 협정 국가 간 호혜무역이 통상거래의 60%를 넘어섰다. 이런 판에 무역의존도가 70%에 육박하고, 연 2백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이 참여를 거부한다면 극단적 이기주의로 비춰질 뿐이다. 한.칠레 FTA에 따른 국내 농업 피해는 10년간 최대 6천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는 이보다 많은 1조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런데도 비준에 반대해 그 몇십배의 경제적 손실과 함께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일자리'는 물론 한국의 미래도 안중에 없다는 뜻이나 진배없다.

며칠 전 국회에서 육탄으로 비준을 막았던 몇몇 의원들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모른다면 자격이 없고, 알면서도 그랬다면 더더욱 자격이 없다. 국회는 다음달 비준 통과를 재추진할 예정이지만 결과는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국회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몇몇의 금배지 놀음에 한국 경제가 더 골병드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