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숨은 주역 김만복 국정원장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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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7월말 이후 김만복(61) 국정원장이 대통령 특사로 두 차례 비공개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성사됐다. 남측에서 구체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7월. 여기다 국정원장 방북 전에 실무적 합의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상회담을 둘러싼 남북 접촉이 급물살을 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남북 관계에서 김만복 원장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7년 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임동원 국정원장이 두 차례 극비리에 방북한 바 있다. 그러나 훗날 밝혀진 정상회담 관련 비화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특사였던 박지원 문화부 장관의 역할이 훨씬 더 컸다. 박 장관은 총선을 사흘 앞두고, 당시 박재규 통일부장관과 함께 내외신 기자회견 방식으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반면 이번에는 청와대에서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의 공식 발표에 이어 김 원장이 직접 정상회담 추진 경과를 발표했다. 그동안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 정치권 인사들이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북측에 메시지를 전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정상회담 성사 드라마의 주인공은 김 원장 한 명이라는 의미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1차장)이 지난해 11월 국정원장으로 발탁된 것은 국가정보원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국정원 공채 출신이 국가 중추 정보기관의 수장이 된 것이다. 국정원장은 전통적으로 집권 세력의 핵심 인사인 외부 인사가 맡아온 게 관행이었다. 내부 인사의 승진이라는 점에서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크게 반겼다. 더욱이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 후 국정원에 들어가 국정원의 3대 핵심 기능이라고 할 국내ㆍ해외ㆍ북한 분야를 두루 거쳤다. 국정원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를 가리켜“선배들에게 겸손하고 후배들에게 친화력을 발휘해온 데다 선후배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온 사람”이라고 평했다.

다만 그가 참여 정부 들어 워낙 고속 승진을 해온 터라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뒷말이 적지 않다. 김 원장은 참여정부 출범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발탁됐고 2004년 2월 요직 중의 요직이라고 할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4월 선임 차장 자리인 해외 담당으로 옮긴 후 6개월여만에 원장으로 발탁됐다.

그의 고속 승진 배경과 대해서는 최근 국정원 상황과 그의 위치가 묘하게 맞물렸다는 점이 꼽힌다. 참여정부 들어 국정원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 개혁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공채 출신으로 국정원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김 원장이 그 적임자로 지목됐고, 그 과정에서 내외부의 큰 반발 없이 마무리를 해왔다는 평가다. 김 원장에게는 그만큼 운이 따라줬다는 얘기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은 깊지 않다. 다만 노 대통령의 최측근 386 세대들과는 깊이 교류해왔다. 이들로부터는 정치적 감각도 인정받아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 원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임기 말에 부임한 김 원장은, 원리원칙만 고집해 적지 않은 논란을 낳은 두 전임 원장과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물론 노 대통령측과도 평상시 쌓아온 인맥이 김 원장을 제2차 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한 요소인 셈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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