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4부] 겨울 (1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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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그 날 밤 결국 쪼유는 우리 집에서 잤다. 내 침대에서 함께 잠이 드는데 쪼유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렸고 나 역시 쪼유가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알고 불편해할까봐 잠이 든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줌은 왜 그렇게 자꾸 마려운지, 늦은 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는데 어둑한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근데 말이야 다니엘씨, 이상하게 쪼유가 가출한 게 위안이 되는 거야. 나 나쁜 여자인가? 아니 그냥 집에서 있는 엄마의 딸들도 불만이 많구나, 하는 이 평범한 사실이 위로가 되었어. 나 늘… 내가 일한다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은 겁먹고 있었거든….”

엄마는 낮은 소리로 웃고 있었다. 엄마가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내게 들었다. 나는 엄마가 일하는 것을, 그래서 낮에도 가끔은 밤에도 집을 비우는 것을 당연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쪼유가 엄마를 싫어한다는 사실에서 그런 위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쪼유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수능 시험 날이 왔다. 수능 시험날 아침 엄마는 전복죽을 끓였다. 녹두 색 전복죽은 맛이 있었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잘 먹을 수가 없었다. 행여라도 먹고 탈이 날까봐 밥이 아니라 죽이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일어나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했다. 죽을 먹다 말고 내가 기도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1교시는 내가 공부한 것보다 잘 보게 기도해 주고, 2교시는 내가 모르는 게 나와도 잘 알아맞힐 수 있게 기도해주고 3교시 이후에는 하느님께서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 줘.”

죽을 먹으며 내가 말하자 엄마가 기도를 하기 위해 경건한 표정을 짓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외우기 너무 힘들어…. 적어봐…. 고대로 하느님께 전할게.”

말은 심드렁했지만 엄마도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물을 열 컵도 넘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학교를 쉬는 동생들을 억지로 깨웠다.

동생들은 졸린 눈으로 멍청하게 내게 인사를 했다.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누나 시험 잘 봐” 하며 판에 박힌 인사들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판에 박히고, 졸린 표정을 감추지도 않는 동생들이 이상하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베이스 캠프를 떠나 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딛는다는 것을 생각했고, 베이스 캠프에 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위녕, 고맙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네가 너무나 공부를 잘했다고 해봐. 그럼 엄마는 오늘 너무나 초조했을 거야. 서울대냐 아니냐, 점수 1, 2점에 얼마나 초조하겠니? 그런데 다행히도 너는 내게 그런 걱정은 면하게 해주었어. 고맙다 우리 딸….”

수험장까지 차를 태워다주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말끝에 나를 보고 빙긋이 웃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약간 기가 막혔다. 하지만 엄마는 거짓말로 나를 위로하는 타입의 사람은 분명 아니었기에 나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긴장하지 마, 엄마가 네가 말한 그대로 기도해 줄게. 하지만 위녕, 대학이라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너의 전부도 아니야. 너에게는 아주 많은 날들이 있어. 이것이 첫 번째 선택이고 관문이긴 하지만, 그리고 비록 평생 동안 너희 이력에 카인의 이마에 새겨진 표지처럼 대학이라는 것이 따라다니긴 하겠지만,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편안히 보내”

“엄마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낼 거야?”
 
오늘도 텔레비전 뉴스에는 교문에 붙어서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길 기도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비칠 것을 생각하며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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