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따돌림당해도 화내면 안 돼 그럼 성격도 나쁜 애가 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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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까매서 안 더워?

박채란 글, 이상권 그림, 파란자전거
120쪽, 8500원, 초등 3∼4학년

  다문화가정 어린이의 이야기를 다룬 동화다. 배경은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인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 3년 전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 『국경없는 마을』(서해문집)을 내놓았던 저자가 이번엔 이주 어린이의 삶을 세 편의 동화로 풀어냈다. 주제는 ‘인권’과 ‘평등’, ‘차별없는 세상’ 등이다. 주제가 선명할수록 내용은 유치하거나 신파조가 되기 쉬운데, 이 책은 그 한계를 벗었다.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아 금세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표제작 ‘까매서 안 더워?’의 화자는 두 명이다. 한 명은 코시안인 동규, 또 한 명은 동규가 좋아하는 여자친구 윤서다. 윤서는 까만 피부의 동규와 연극 파트너가 되기 싫은 ‘평범한’ 아이다.

 학예발표회를 앞두고 같은 조가 된 윤서와 동규. 공주 역을 하게 된 윤서는 동규가 왕자 역을 맡을까봐 조마조마하다. 눈치 빠른 동규는 선뜻 호위병을 자원한다.

 동규는 늘 밝고 명랑한 아이다. 깊은 속마음은 동규가 늘 갖고 다니는 ‘만물노트’에 적혀 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사는 정준이에게 동규가 “그렇게 차가운 걸 많이 먹으면 장에 안 좋아”라고 한 날. 동규는 정준이에게서 “넌 까매서 안 더운지 몰라도 난 더워! 그러니까 조용히 해”란 말을 듣는다.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날 동규는 노트에 이렇게 적는다.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으로 손바닥을 세게 누르면 화가 나는 걸 누를 수 있다. 화를 내면 피부는 까만 데다 성격도 나쁜 동규가 된다. 그럼 친구가 없어질 테니까. 그러면 동규는 외로워질 테니까. 그러니까 동규는 항상 웃어야 한다.’

 결론은 뭉클한 해피엔딩이다. 우여곡절 끝에 윤서는 동규에게 쌓아두었던 ‘마음의 벽’을 허문다. “미안해” “괜찮아”를 주고받지 않아서 더 따뜻한 화해였다.

 또 다른 이야기 ‘티나, 기다려 줘’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민영이가 주인공이다. 영어학원에서 배운 대로 했는데도, 미국 아이들은 민영이가 입을 뗄 때마다 자꾸만 키득댔다. 게다가 미국에 온 지 2년이 됐다는 한국 아이 은혜는 민영이를 피했다. “아는 척하지 마. 나도 쟤네들이랑 겨우 친구가 되었단 말이야. 부탁이야.”

 결국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민영이. 비행기 안에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필리핀 아이 티나가 민영이 반으로 전학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놀림당하고 따돌림당하는 티나를 볼 때마다 미국에서의 자기 모습이 생각나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민영이는 티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한다.

 이야기마다 아이들의 내면의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차별당하는 아이만큼이나 차별하는 아이의 상처 또한 깊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가 더 묵직한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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