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원점서 맴돌아|비상구 안 보이는 남북 핵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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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이 남북간 핵 논의를 지연시키는 전술로 나오고 있다.
북한이 4일 보내온 남북 핵 회담에 관한 세 번째 수정안은 지난번 전화통지문에서 핵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던 것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
강성산 북한정무원총리의 통지문은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적인 절차토의에 핵 문제를 섞어 놓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판문점 노상에서 시간이나 보내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며 이는 특사문제를 지체시키고 비핵화를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해 남북간 핵 문제 논의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용할 가능성도>
이에 따라 지난달 25일 우리측이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대표 접촉을 제의한 이래 서한·전통문을 통한 세 차례씩의 남북 「핵 대화」시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더구나 4일의 북미 고위급 2차 회담이 아무런 타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북한 핵 문제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향해 굴러가던 남-북·북-미간의 두 수레바퀴가 현재로선 일단 멈춘 셈이다.
물론 북한이 앞으로 북-미간의 추가접촉이나 12일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발효직전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배경에서 보면 북한의 행보는 가능한 한 회담을 지연, 긴장국면으로 몰고 가면서 한미양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의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4일 수정제의에서 핵 문제는 특사교환에서 이뤄져야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간 대화의 성사를 극히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4일 수정제의는 핵은 남북간 문제가 아니라 북·미간 현안임을 다시금 천명, 의제와 고위급대표회담 형식에서 한 발짝 물러나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도 논의할 수 있다는 우리측의 양보안을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미뤄 볼 때 북한이 지난달 25일 핵 문제를 논의키 위해 고위급회담을 갖자는 우리측의 첫 제의에 대해 특사교환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결국 핵 문제를 희석하면서 지연전술을 펴겠다는 의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겉포장만 그럴 듯>
「쌍방 최고위층이 임명하는 특사」라는 것은 겉포장만 그럴듯할 뿐이지 결국 특사의 자격이나 의제에 대한 논란을 끌어냄으로써 시간을 최대한 미뤄보자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남북고위급회담을 폐기시킴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 시키겠다는 계산도 깔려있을 수 있다.
북한은 남북간 대화를 결국미국과의 협의 보완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따라서 북-미 회담의 진전이 없는 한 일간에 대화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게 됐다.
정부는 일단 북측의 수정 제의에 대해 기존방침대로 「핵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접촉」입장을 7일 통보했으나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고 설령 성사가 되더라도 거기에서 핵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있다.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의 특별사찰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특사교환 문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은 촉박한 시간 내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명분 쌓기의 공허한 핑퐁식 제의와 수정제의를 교환할 일밖에 남은 게 없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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