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4부] 겨울 (11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그림=김태헌

나는 쪼유네 집에 몇 번인가 놀러 갔었다. 쪼유네 집에서는 평범한 냄새가 났다. 그냥 엄마와 그냥 아빠가 별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그냥 편안한 분위기 말이다. 우리 엄마처럼 자신에게 또 묻고 묻고 뭐 이런 복잡함이 없는 집. 반항을 할 때에도 그냥 신경질이 난다, 고 하면 말아버릴 그런 집…. 그건 특별한 집에서 사는 아이들은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이었다. 쪼유 엄마는 음식을 잘 만드셨다. 가끔은 야간 자율 학습 끝나고 먹으라며 나를 위해 카스테라를 구워서 쪼유 편에 보내주기도 하셨다. 손수 거품을 많이 낸 유정란과 꿀을 넣어 구운 카스테라는 얼마나 고소하고 달콤한지…. 엄마가 집을 비운 주말에 놀러가면, 내가 좋아하는 우거지 갈비탕을 손수 끓여주시기도 했다. 나는 엄마표 음식이 있고, 엄마가 늘 안정되게 집에 있는 쪼유가 부러웠는데, 쪼유가 우리 엄마를 부러워하는 소리를 듣자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가끔 네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꼭 네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우아하게 책을 보고 공부하고 그리고 책을 내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교양 있게 말하는 그런 엄마 말이야. 그래,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야. 그러면 나는 엄마가 존경스러워서 정말 열심히 살 것 같애, 우리 엄마처럼, 내가 ‘자식이 엄마 소유물이야? ’이러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소유물이지’ 이렇게 말하는 엄마 말고.”
 
“너희 엄마 정말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니 우리 엄마도 늘 교양이 있는 건 절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사태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나는 우선 그렇게 물었다. 내가 묻는 양이 하도 심각해 보였는지 쪼유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그건 아니지…. 요새 신문 방송 인터넷 주워들은 게 많아서 그런지 꼭 그렇게 말하진 않지.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야. 내가 너희에게 이만큼 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한다…. 그러니 너희도 엄마 말을 따라야 한다. 지겨워!”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엄마가 쟁반에 핫케이크를 구워 들고 있었다. 열린 방문 뒤로 갓 구워진 핫케이크 냄새가 엄마를 따라 들어왔고 제제가 “형아도 먹으면 좋을 텐데….” 뭐 이렇게 종알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쪼유는 역시 연기자가 될 소질이 있는지, 제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지겨워! 할 때 바로 어른들이 싫어하는 육두문자라도 갖다 붙일 태세더니, 얼른 일어나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하는 양이 꼭 남자 친구네 집에 인사라도 온 것 같았다. 그럴 때 쪼유는 얼마나 조신한 여학생인가, 그리고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또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 그러니까 엄마는 가끔 쪼유 이야기를 하면서, 아유 걔는 천상 여자라니까, 하는 것이다. 나는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잠깐 앉아도 되겠니?” 하며 엄마는 내 방 의자에 앉았다. 순간 엄마는 내 방을 빙 둘러보았는데 그때, 저게 뭐니, 저건 좀 치우고, 하는 잔소리가 목까지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쪼유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내가… 여기 잘 있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어. 속이… 많이 상하신가 보더라.”

“우리 엄마가 뭐래요?”

쪼유는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아까 엄마에게 인사할 때의 조신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네가 이런 엄마 아빠 밑에서 태어난 게 속상하다고 해서… 어머니가 나도 너 같은 딸 낳은 게 속상하다, 고 하신 게 맘에 걸리신 모양이야.”
 
역시 쪼유는 엄마를 닮은 모양이었다. 쪼유 엄마의 대답도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쪼유가 몹시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