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 통산 홈런 755호 타이 기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마침내 755호 홈런이 터졌다. 그러나 관중석에서는 기립박수와 야유가 뒤섞여 나오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1976년 행크 에런 이후 무려 31년 만에 나온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최다 홈런 타이기록이었지만 그 주인공이 '오만한 약쟁이' 배리 본즈(4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기 때문이다.

본즈는 5일(한국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페코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회 초 왼쪽 담장을 넘기는 755호 홈런을 날렸다. 한 시즌 최다홈런기록(73개)과 통산 최다홈런기록을 동시에 보유하는 위대한 순간이었지만 메이저리그의 수장인 버드 셀리그 커미셔너는 박수도 치지 않고 냉랭한 얼굴로 지켜봤고, 에런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아예 경기장에 오지도 않았다. 미국 언론은 본즈 찬양 대신 오히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에런이 얼마나 위대한 타자였는지를 재조명하느라 바빴다.

◆반쪽짜리 홈런왕='약의 힘으로 만든 홈런'이란 미국인들의 의심은 본즈를 외로운 홈런왕으로 만들었다. 그가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은 '그늘진 게임(Game of Shadows)'이라는 책과 동료, 옛 애인의 진술 등으로 만천하에 밝혀졌다. 본즈는 2003년 연방대법원에서 "(금지약물인지) 알면서 복용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고, 기소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무죄 판결을 받은 프로풋볼(NFL) 스타 O J 심슨이 실제론 아내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본즈의 결백을 믿지 않는다. 많은 이는 그의 홈런 기록에 별표(*)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방 대배심은 9월에 본즈를 위증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약 유죄가 확정된다면 그의 홈런은 정말 참고기록으로 전락한다. 미국 야구계는 그동안 "약물이 파워를 늘려줄 수는 있지만 공을 맞히는 능력까지 키워줄 수는 없다"는 논리로 약물 복용에 비교적 관대했다.

그러나 본즈의 기록 행진은 야구계에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사회적으로 마약이나 금지약물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거짓말에 대해 단호한 미국의 여론이 본즈를 반쪽짜리 홈런왕으로 만든 것이다.

◆사회 통합에 실패한 영웅=스포츠는 영웅을 통해 사회를 통합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 그리고 1982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 결승에서 소련을 꺾고 우승한 아이스하키 대표팀 등은 미국 사회를 통합시킨 촉매가 됐다. 그러나 본즈는 대기록을 세웠음에도 '통합'이라는 영웅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자존심 때문인가=왕년의 야구 스타인 아버지 보비 본즈가 자신에게 충고할 때 본즈는 "아버지는 나보다 야구도 못하면서 내게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본즈의 강한 자존심을 드러내는 일화다.

본즈가 약물에 손대게 된 계기도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늘진 게임'에 따르면 본즈는 98년 모든 팬들의 관심이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홈런 경신에 쏠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본즈가 보기에 맥과이어는 약물의 힘을 빌린 2류 선수였다. 맥과이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그가 그토록 경멸하던 약물에 손을 대게 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