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거짓으로 포장된 세상 … 그래도 속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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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멋진 옷을 지었다는 사기꾼, 그 말에 속아 착한 사람 대열에 끼겠다며 벌거벗고 군중 퍼레이드를 한 임금님과 ‘임금님의 멋진 옷(?)’을 찬미하던 군중 - 하지만 이들의 거짓과 위선은 어린이의 천진한 용기에 의해 폭로된다. 안데르센 명작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진실은 날카로운 이성이나 번뜩이는 지혜가 아닌, 사심 없는 순수함에 의해 드러난다.

 순진한 어른으로 불리는 K의 경험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날 K는 지인의 소개로 예일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성공한 청년 실업가를 만났다. 그의 화려한 배경은 K를 충분히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만난 지 20분도 채 못 돼 K는 그를 ‘사기꾼’으로 단정했다. 첫 만남에서. 예일대 1학년 말부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교수의 애제자가 됐다는 그의 자랑 때문이다. 고지식한 K는 ‘아무리 천재라도 외국 생활 1년 만에?’란 의문을 품었고 ‘어쨌건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6개월 뒤 K는 그의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좋은 집안의 규수, 고학력 여성에게 결혼을 빙자해 접근, 거액의 ‘사업자금’을 챙긴 사기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수사를 통해 확인된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보도를 접한 K는 “나도 한눈에 알겠던데,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이 왜 그런 사기꾼에게 놀아났을까”하며 의아해 했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선 속고 속이는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5년 만에 큰 장(場)이 선 정치권에선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대선 후보 검증이 화두며, 신정아씨 가짜 예일대 박사 파문으로 다른 유명인의 학력도 검증 도마에 오르고 있다. 또 방송 중 버젓이 거짓말을 하다 들통 난 연예인들 이야기도 세간의 화젯거리다.
  이런저런 사기극 주인공들의 문제점은 일단 부도덕한 욕망과 인격장애 탓으로 돌려 놓자. 하지만 K의 의문처럼, 사람들이 이들의 사기극 피해자로 전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누구나 백마 탄 왕자(공주)를 그리다 어느 날 누군가를 보며 “그(그녀)가 나타났다”고 믿고 싶은 심리가 있다. 이는 정신의학적으로 ‘잃어버린 자기애(Lost Narcissism)’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자아 성취를 위한 노력을 통해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자아성취 과정이 힘들다 보니 성공한 주변 인물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심리(유혹)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스타나 영웅을 갈망하고 환호하며, 때론 그들의 거짓 놀음에 쉽게 희생자로 전락하는 이유다. 아무리 큰 업적도 남의 것은 결국엔 내겐 허상이다. 작더라도 내 손으로 노력해 일군 성취야말로 내가 만족해야 할 실체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현실을 직시하고 “임금님은 벌거숭이”를 외치는 현자가 될 수 있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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