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곁에 있을게, 내가 죽은 뒤에도 - 별빛 속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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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4면

죽은 자들은 미련이나 원한이 남아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생(生)과 사(死)의 불분명한 경계를 헤매는 ‘별빛 속으로’는 조금 다른 사연을 들려준다. 살아 있던 시절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는 영혼들. 그들은 갑자기 끝나 버린 자신의 삶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다만 남은 이들을 걱정하여 자그마한 음모를 꾸민다. 남겨진 아이가 한눈 팔지 않고 길을 잃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별빛 속으로’는 그 착한 마음에 눈물이 나는 영화다.

어두운 복도, 파란 나비 한 쌍을 발견한 대학교수 수영은 나비를 따라 강의실에 들어가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년대 후반 독일 근대시 수업을 듣던 대학생 수영(정경호)은 거침없지만 어딘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선배(김민선)를 만난다. 수영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그녀를 ‘삐삐’라고 부른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까지 따라가야겠지?”라고 묻던 ‘삐삐’가 운동가 ‘흔들리지 않게’를 부르며 대학 건물에서 투신자살한 다음, 수영에게는 불가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웃으면서 몸을 던졌던 ‘삐삐’가 수영 앞에 나타나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에게 과외를 받게 된 여고생 수지(차수연)와 그녀의 집엔 비밀이 있는 듯하다.

불길한 사운드로 공포영화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며 시작하는 ‘별빛 속으로’는 곧바로 사랑스럽고 명랑한 판타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수영을 초대하는 ‘삐삐’, 빈 병마다 장미꽃을 꽂아두고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 따라 춤추는 수영, 허공을 맴돌다 사랑하는 소녀가 사는 집으로 내려앉는 장미꽃잎, 처음 먹어보는 키위의 맛처럼 상쾌한 과즙이 흐르는 청춘의 날들.

그럼에도 ‘별빛 속으로’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까닭은 청춘을 잃었다고 하여 사랑마저 놓아버리진 않은 영혼들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저 예쁜 아이들이 오래 살아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 때문에. 그리하여 악의라고는 없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한참 동안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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