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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6월 호에 추도특집|타계한 천상병 시인 유고시 25편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달 28일 63세를 일기로 타계한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 25편이 발표됐다.
『현대문학』6월호는「천상병 선생 추도특집」을 마련해 미발표 시 25편, 번역시 8편, 산문및 일기등 유고와 함께 천씨와 40년 지기였던 극작가 신봉승씨의 교유기, 그리고 문학평론가 김재홍씨의 천시인론을 실었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하는데/그걸 알면서도/나는 끊지 못한다.//시인이 만일 금연한다면/시를 한편도 쓸수 없을 것이다.//나는 시를 쓰다가 막히면/우선 담배부터 찾는다.//담배연기는 금시 사라진다./그런데 그 연기를 보고있으면/인생의 진리를 알 것만 같다.//모름지기 담배를 피울 일이다./그러면/인생의 참맛을 알게 될 터이니까!』
시「담배」전문이다. 말년에 쓴25편의 시들은 담배·술·개·아내·장모·친구·자연등 그와 가장 가깝게 사는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과연 이것도 시가 될 수 있을까」싶은, 시적 수사를 배제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절대긍정으로만 바라본 이들 시편을 통해 그의 천진무구함, 혹은 무애의 시혼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시공을 뛰어넘는 때묻지 않은 마음 그 자체는 천씨의 일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기는『오늘 비로소 아내한테서 일기책을 구했다. 내가 바라던 두터운 일기책이니, 내 마음에 썩 들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89년8월13일치부터 27일치까지를 선보이고 있다.
『새벽 3시45분에 눈을 뜨다.…먼저 천국에 간 전봉건형이 체신부의 일일장으로 취직이 되어 있는데 나도 또한 체신부의 일일장이 되고파서 먼저 가신 아버지께 물으니 아버지는 천국체신부의 윗사람을 잘 안다는 데서 잠을 깬 것이다. 하나님! 참 말씀이지 죽으면 천국에 가서 체신부 일일장이란 일꾼밖에 되질 못하는지요. 체신부의 일일장이란 하루만의 장관이라는 뜻이 아니고 말단직원이었다.』
8월27일 꿈에서 깨어나 쓴 일기. 꿈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평생 직업을 거부한 채 구걸만 하던 시인이 저승에 가서 큰자리 하나 얻어 보겠다고 역정을 품는다는 것도 천씨다운 무애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천상병론인「무소유 또는 자유인의 초상」에서 김재홍씨는 천씨의 시를『온갖 폭력이 횡행하는 이 불모의 연대, 인간상실의 시대에 인간회복의 메시지이자 시적 양심선언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평했다. 『새』 『주막에서』 『천상병은 천상시인이다』 『요놈!요놈! 요 이쁜 놈』등 천씨 시의 특징을 ▲무소유 또는 가난의 철학 ▲소외와 외로움의 정서▲과거적 상상력과 흐름의 시학 ▲동심지향성 또는 천진성 ▲신앙시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적 특질로서 순수시공을 열었던 천씨를 김씨는 만해와 공초·김관식·고은·박용래·김지하·박정만 등으로 이어지는 진짜시인, 참 자유인의 계보 중심에 위치시켰다.
『곤궁한 삶의 극한 속에서도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여 인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일깨워준 참 자유인, 진짜 시인의 타계로 이제 이 땅에서 시인의 신화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김씨는 시와 인간으로서의 천상병 시인의 의미를 밝혔다.【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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