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 걸음 중국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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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국 외교가 최근 들어「갈지」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무역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미국의 대중국 최혜국(MFN)지위 연장을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이 내세우는 논리와 홍콩 민주화 문제로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영국에 취하는 기본입장은 정면으로 상충된다. 뿐만 아니라 대만에 무기를 판매한 미국과 프랑스에 대해 중국이 취한 대응조치도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고, 특히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태도 역시 모호하기 그지없다.
중국은 빌 클린턴 미행정부가 대중국 MFN지위 연장조건으로 중국 내 인권문제, 수감중인 죄수의 노동력을 이용한 상품수출 금지 등을 연계한다는 조건부 연장방침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인권이나 죄수 노동력 이용 등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미국이 간섭할 성질이 아닌 국내문제이고, 정치적 사안과 무역을 연계시키는 것은 국제관례로 비추어 볼 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같은「정경분리」원칙은 홍콩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영국과의 협상에서는 정반대로 적용되고 있다.
중국은 홍콩 민주화개혁안을 둘러싼 영국정부와의 마찰이 한창이던 지난 3월 크리스 패튼 홍콩총독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 개혁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영국에 무역보복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홍콩 민주화 개혁이라는 정치적 사안을 무역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으로 중국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정경분리원칙과 정면 배치된다.
중국외교의「이동잣대」는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보복조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가 지난해 12월말 대만에 신예 미라주 2000-5전투기 60대를 판매키로 한 결정에 대해 중국은 즉각 보복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광주주재 프랑스 총영사관 폐쇄와 함께 광주시 지하철건설 사업에 프랑스 기업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외교·경제적 보복을 가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대만에 F-16기 1백50대를 판매키로 한 미국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올해만도 미국에 세 차례나 대규모 통상사절단을 파견, 항공기·자동차·화학비료·통신장비 등 10억 달러 이상의 구매에 나서는 등 끊임없는「러브 콜」 을 보내고 있다.
외교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대미 무역수출이 전체수출액의 25%이상이고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벌어들인 외화가 1백83억달러나 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 어떤 형태든 마찰을 빚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음직하다.
하지만 대의명분과 원칙을 유달리 강조해온 중국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동일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조치를 취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같은 중국외교의 양면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적 입장은 견지하면서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사찰 거부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에는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에 대한 입장표명은 줄곧 유보하고 있다. 다만『당사자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만을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경제적이건 물리적이건 북한에 대해 어떤 형태의 제재를 가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으며,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최상책임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해결방식을 제시하는 것과 국제사회 쟁점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별개 문제다. 더욱이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안이며,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외교적 비중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태도는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다. (문일현<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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