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질문,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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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걸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399)를 21세기 서울 시청광장으로 불러냈다. 행인들을 보고 그 옛날에 자신이 수많은 사람과 철학을 이야기하던 아크로폴리스가 떠올랐는지, 일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소크라테스는 금방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그에게 눈길을 주려는 서울 시민이 없었던 것이다.

이어 백화점으로 밀려들어간 소크라테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는 좋아. 그런데 왜 나의 머릿속엔 플라톤의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떠오르지. 아무래도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일탈한 것 같아."

혼잡한 백화점을 빠져 나온 소크라테스가 이번에는 허공으로 눈길을 줬다. 그런데 건너편 전광판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해 의원 5~6명 긴급체포''가짜 주식 피해 4백90억'등의 기사 제목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 옛날 내가 살던 시대의 아테네 사람들과 똑같은 잘못을 현대인들도 범하고 있군. 인간 본래의 모습에 흠집을 내가면서 부(富)와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리고 경제적 '안보'를 위해 너무 많은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그가 닿은 곳이 한적한 도서관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각자 직면한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크라테스의 표정을 보니 내심 '이런 곳이라면 이 사람들과도 느긋한 대화가 가능하겠지'라는 욕심이 이는 것 같았다.

'리더는 질문으로 승부한다'는 이 대목에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마하트마 간디.마티 루터 킹 주니어 등이 특히 옥중에서 최고의 인물로 꼽았던 소크라테스를 21세기에 되살려내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대화의 기술, 더 좁게는 질문의 기술을 전하고 있다. 지은이 로널드 그로스는 지난 20여년동안 자신의 영적 성숙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소크라테스를 잡고 그의 개성과 삶에 대한 자세 등을 잘 소화해 자기 것으로 체화한 인물이다.

질문의 기술이라는 표현이 책의 핵심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질문의 목적이 상대방에게서 뭔가를 뽑아내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유명한 가르침대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특별히 엄격했다.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과 가르침 중에서도 지은이는 끊임없는 자문을 통해 내면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그렇게 얻어지는 믿음을 실천하고, 또 타인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소크라테스가 길거리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한 대화의 기술을 통해 지은이 그로스가 전하고자 하는 미덕은 개인의 영적 성장과 순박함, 우정, 베풂 등이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점검하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가급적 신중하게, 느리게 내려 달라는 주문이 더해진다. 학생들에게 정답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교육환경에서 고민하는 교사들에게 유익하게 읽힐 책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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