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부추긴 민주당대표/최훈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24일 경북 예천지구당 보선본부발대식에서 김영삼정부의 TK(대구­경북)푸대접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대표에 앞서 연설한 민주당간부들도 재산축재 과정의 문제 때문에 의원직을 자진 사퇴한 이곳 출신 유학성 전의원 사퇴를 한결같이 『TK에 대한 보복』이라고 단정,현정부를 공격했다.
안희대지구당위원장은 『유 전의원말고 부정축재를 한 사람이 한두명이냐』고 운을 뗀뒤 『현정권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해 TK세력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는 『PK(부산­경남)세력의 구축을 위해 현정부는 대구­경북지역을 도둑놈 고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논리를 비약시켰다.
안위원장 다음에 이 대표가 등단했다. 그는 선거를 목전에 둔 안 위원장의 극단적 주장을 추스리기는 커녕 한수 더 떠 PK대 TK의 대결구도를 부추겼다.
이 대표는 『예천에서 당선시켜준 유 전의원이 민자당에서 가장 부정축재를 많이 한것도 아닌데 쫓겨난 것은 TK의 대부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엄청난 슬롯머신 이권의 배후가 박철언의원 한명뿐인가』라며 『현정권이 자기길을 가로막았던 TK세력에 보복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 대표의 결론은 『유 전의원을 쫓아낸 민자당에 표를 주지말자』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유 전의원사퇴의 배경이 된 재산형성과정의 「문제」에 대해선 별반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연설은 TK의 피해의식조장을 겨냥했다.
선거에서의 반사이익을 노리는 후보자들의 욕심이 사안의 본말을 전도케하는 예는 종종 있다. 이것도 비리중 하나다. 그래서 민주당은 권위주의 시대에 저질러진 각종 비리와 부정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늘상 주장해왔다.
이 대표의 지역감정 촉발로 유 전의원이 과연 명예가 회복되고 그에 대한 동정이 주민들의 지지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과거 김대중씨가 호남에서 「푸대접」론을 거론했을 때와는 대회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뭔 소리를 하느냐며 당황하는 빛을 띠었다.
대선패배의 제1요인을 지역감정으로 꼽았던 민주당과 이대표는 벌써 그 악몽을 잊었는가 묻고 싶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