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스럽던 세상 다시생각…”/혀잘린 민희양에 몰리는 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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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시준비생서 주부까지 성금
수술비가 없어 잘린 혀의 재생수술을 못하고 있는 방민희양(5)의 딱한 소식(본보 23일자 22면)이 전해지자 그녀를 돕겠다는 온정의 손길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방양은 집부근에서 놀다 불량배에 의해 동네친구와 함께 혀가 잘렸으나 가난때문에 수술비 3백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평생 말을 못하는 불구로 살아야할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사이에 고시준비생으로부터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10여명이 방양을 돕겠다고 나섰다.
익명의 한 독자는 방양의 수술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본사에 알려왔다. 방양의 얘기를 읽고 밤새 치를 떨며 한잠도 잘 수 없었다는 이 독자는 그녀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 어린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독자는 방양 기사를 읽고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인 민희의 수술을 위해 1년된 아들의 저금통장을 보내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책과 씨름하다 우연히 방양의 딱한 사정을 읽게된 엄형섭씨(26)는 23일 오후 11시 서울 구로구 대림동 강남성심병원 607호실에 입원중인 방양을 직접 방문해 책값으로 쓰려고 아껴두었던 5만원을 내놓고 갔다. 엄씨는 『같은 또래의 조카가 생각났고 마음이 몹시 아파 적지만 치료비를 보태줘야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며 자고 있는 방양의 머리를 꼭 안아주고 돌아갔다.
일부독자들은 23일 본보기사에 방양이 입원한 병원이 강남성모병원이라고 잘못 표기되는 바람에 이곳을 찾았다가 헛걸음친후 정확한 병원이름을 물어오기도 했다. 방양의 어머니 김연표씨(35)는 『살아 있는 아이의 혀를 자르는 매정한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었는데 이런 고마운 분들도 계시니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며 옷소매로 솟구치는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방양의 비극과 그 소식이 전해진후 쏟아지고 있는 각계의 온정은 어머니 김씨의 말대로 메말라만 가는 이 사회에 아직도 훈훈한 정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해주며 「더불어 사는 사회」가 결코 불가능한 이상만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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