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전·현직 … 릴레이 칭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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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합이 필요한 시점이면 적극적으로 뭉친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그의 전임자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최근 행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사실 아직 권력 투쟁을 벌이는 사이다. 특히 지난해 9월 비리로 해임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上海) 전 당서기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공개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후 주석은 이를 통해 장의 핵심 측근인 천량위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러나 최근 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 기념행사를 전후해 두 지도자는 서로를 칭찬하는 미덕을 보였다.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한다는 점을 분명히 과시한 것이다.

1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건군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후 주석은 장을 극진히 대접했다. 먼저 입장한 후는 바로 다음에 입장한 장이 앉은 뒤에야 착석했다. 전임자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였다. 장은 후의 바로 왼쪽에 앉았다. 그의 왼쪽에는 다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앉았다. 장이 중국 최고 실권자 둘을 좌우에 거느린 모양새다.

후 주석이 기념사를 읽는 동안 장은 한눈을 팔지 않고 원고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신화통신은 장이 후의 기념사에 관심과 경의를 표한 것으로 해석했다.

후는 기념사에서 국방 역량을 제고시킨 장을 한껏 치켜올렸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의 공적에 비견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이 때문인지 장은 기념식이 끝나자 후에게 두 차례나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웃었다. 기념식이 끝난 뒤에 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자를 탁자 속으로 밀어넣어 장이 먼저 빠져나가도록 배려했다.

장은 지난달 31일 건군 80주년 기념 전시회에 참석해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는 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중국식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콩의 명보(明報)와 문회보(文匯報)는 2일 올 10월로 예정된 17기 당대회를 앞두고 두 전.현직 지도자가 큰 틀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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