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냉정…승부근 몸에 밴 "바늘낭자"|바데스쿠 꺾은 현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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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과연 현정화였다.
백척간두의 벼랑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얄미울만큼 냉정해지는 현정화.
바데스쿠와의 준결승전은 바로 이런 현의 진면목이 여지없이 드러난 한판이었다.
바데스쿠의 강력한 백핸드 푸시에 고전, 세트를 주고받는 치열한 접전 끝에 맞이한 제3세트에서 현은 20-15의 절대열세로 몰리며 패색이 완연했다.
하지만「피노키오」란 별명답게 오똑한 콧날의 현은 결정적 위기에서 한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바데스쿠의 의표를 찌르는 무회전의 긴서브를 밀어 넣곤 벼락같은 송곳 스매싱 등으로 내리 7득점, 22-20의 기적같은 역전승을 따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체력이 급전직하한 현은 바데스쿠의 당찬 포핸드 스매싱과 백핸드 드라이브에 4세트를 21-11로 내준 뒤 마지막 5세트에서도 9-5로 뒤지며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이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유성 감독이 흥분, 작전지시를 내리다 퇴장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은 바로 이때 숨을 돌려 새롭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여유를 찾은 현이 내리 5득점, 10-9로 역전시켰지만 바데스쿠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또다시 17-13의 큰 점수 차로 처졌다.
『녹색테이블에선 절대 울지 않겠다』는 현의 오기가 발동한 것은 이 순간.
바데스쿠에겐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 현은 대담하고 자신있는 스매싱과 짧은 커트로 20-20의 듀스를 만든 뒤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은 포핸드 스매싱으로 2점을 따내 손에 땀을 쥐게 한 박빙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극적인 승리에도 불구, 너무나 담담하게 심판·바데스쿠와 악수를 나누는 현이 무섭게까지 보인 순간이었다. 【예테보리=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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