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문화의식」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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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같은 말이라도「아」다르고「어」다르다』는 말이 있다. 가벼운 뉘앙스 차이 같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엄청난 세계가 있어 어느 쪽으로 발음되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정반대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그 작은 차이를 큰 차이로 보는 자세- 거기에 문화가 있다.
문화는 그러므로 섬세한 분화이며 미세한 분석이다. 실제로 글씨의 한 획, 그림의 한 덧칠, 시에서의 한 작은 이미지가 그림과 시의 전체 주제를 바꾸고 흔드는 일을 우리는 경험한다. 이 분석과 분화가 세밀한 것을 우리는 세련이라고 부르는데 세련된 문화가 말의 참된 뜻에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국민을 자처하면서도 이 세련된 문화를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좋은 문화로 받아들이는데도 무심하다. 오히려 투박한 것을 소박하다고 좋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야성적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이렇듯 거칠고 조잡한 비문화적 상태에 대한 경사와 선호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막」을 접두어로 한 낱말들은 대체로 긍정적 내포를 지니고 있다.「막국수」와 같은 낱말도 한 보기일 수 있겠는데, 그 속에는 은연중 세련을 거부하는 마음과 방법이 도리어 싱싱하고 건강한 생명의식의 반영 아니겠는가 하는 일종의 자긍심이 숨어있다.
거칠고 소박한 것을 미덕시하는 태도는 70, 80년대를 숨차게 지나온 이른바 민중문학론 같은 문단의 열기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문학이 올바른 문학이라는 민중문학론에서 섬세한 문화는 감성이나 문체와 같은 비본질적 문제에 치우친 것으로 비판된다. 그리하여 민중의식이 투철하면 문학적 형상화가 미흡하더라도 오히려 현장감 있고 건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방식은 비단 문학의 세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분야나 경제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의식이 훌륭하고 뜻이 좋으면 수단이나 기법은 다소 떨어져도 무방하다는 방법경시주의가 자리잡게 된다.
가령 정치의 경우 지도자의 뜻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그의 생각이 훌륭하면 그 생각의 실전방법쯤 세련되지 못해도 그다지 흉될게 없지 않느냐는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즈음 벌어지고 있는 개혁작업도 이런 측면에서 더욱 세련된 방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경제부문에서는 이런 비세련·비문화적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진 것 같다. 산업일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품제조과정을 보자. 그것이 작은 장난감이든, 덩치 큰 자동차든 마지막 마무리는 한결같이 엉성하다. 수출된 한국상품에 클레임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직도 유명한 일. 자동차의 경우 그래도 굴러가긴 가지 않느냐는 투로 적당히 마무리하고 섬세한 끝손질을 내팽개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섬세한 세련성이란 치밀한 문화과정을 끝까지 추적해 마무리짓는 마음과 그 수준을 말한다. 이 세련성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곳에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칠고 소박한 것을 원시적인 야성미로 여기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한 야성적인 정치, 야성적인 상품, 야성적인 문학만이 남는다. 그것은 건강한 생명 아닌 자칫 폭력의 이웃이 될 위험이 크다. 문화의 맞은 쪽에는 언제나 거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거친 힘의 맞은쪽에 있는, 그것이 조절되고 극복되고 순치된 정신의 아름다움이다. <김주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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