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묵인 의혹”에 검찰 당황/이원조의원 돌연출국 불똥튀자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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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물증확보 시점과 맞물려/“1명만 속죄양” 비난클듯/“결국은 돌아올 것… 수사의지 변함없다”
안영모동화은행장의 비자금 정치권 유입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이원조의원이 18일 오전 돌연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매우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이 의원의 출국이 검찰의 물증확보 시점과 절묘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정대검중수부장은 『해외로 출국한다 해도 일단 혐의가 드러나면 피할 수는 없다. 전경환씨도 해외로 도망갔었으나 결국 5공청문회에까지 나오지 않았느냐』며 수사의지를 강조했다.
검찰은 이 의원의 출국이 「검찰의 묵인」 또는 「정치적 협상」의 결과로 비칠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의 수사에 미칠 영향 등을 계산하며 우려하는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 험난한 고비를 숱하게 넘어 이제 윤곽이 드러난 단계에서 돌출변수가 생겨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수뢰 힘겹게 확인
검찰은 안 행장을 연행한뒤 정치인들에 대한 뇌물 전달 부분을 집중수사,이원조·김종인·이용만씨 등 6공 실력자들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힘겹게 확인해 냈다.
안 행장의 진술 가운데는 이들 세명 외에도 전직 장관·청와대관계자 등 4∼5명의 명단이 더 나왔으나 검찰은 이 의원 등 세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액수·전달시점 등을 고려할때 뇌물이라기보다 과거의 관행에 따른 인사치레 정도였다고 판단하고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키로 방침을 정했다.
검찰은 지난달말부터 임시국회가 시작됨에 따라 현역의원인 이 의원 등을 소환하려면 국회의 체포동의안을 받아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물증확보를 위한 수표 추적작업을 벌여왔다.
○“곳곳에 블랙홀”
이 전 재무장관과 김 의원의 경우 몇단계의 추적으로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이 의원은 워낙 완벽한 돈세탁을 하는 바람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의 실토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왜 5,6공에선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아왔는지 알겠다』며 『곳곳에 블랙홀이 형성돼 있어 추적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사 보안을 위해 은행감독원측의 협조없이 직접 계좌추적 작업을 벌이던 검찰은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감에 따라 10일께부터 은감원 직원들과 합동추적에 들어갔고 결국 이 의원에게 전달된 수표 일부에 대해 증거를 확보할 단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쪽에 쏟아지는 의혹의 눈길도 만만치 않다.
이 의원은 그동안 나름대로 자구책을 계속 찾아다닌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임시국회에 출석하지 않은채 5일 당뇨병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이때부터 정가·증권가에는 『지난 대선기간에도 민자당 돈줄역할을 했을 이 의원이 폭탄선언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었다.
김 의원이 『교수출신인 내가 돈을 받으면 얼마나 받았겠느냐. 그동안 경제에 기여한 공로도 있는데 나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는 「읍소형」인데 반해 이 의원은 「협박형」이었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 의원이 중병에 걸려 거동조차 못한다는 소문이 나있었으나 병원에 확인한 결과 감기·초기당뇨병 등을 이유로 입원했었고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완벽한 신변정리
이 의원이 병원에서 무슨 일을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무성한 소문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그가 검찰의 물증확보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출국한 것은 아무래도 「막후협상」 의혹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의원이 언제쯤 귀국할지는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의원이 그동안 완벽에 가까운 신변정리를 해온 점을 고려할때 이번 출국도 결코 대책없는 도피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검찰수사도 이 의원의 해외도피에 따라 『관련자 세명중 두명은 도피하고 그중 제일 약한 나머지 한명을 속죄양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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