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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동영상'에 담긴 탈레반 전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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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31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남녀 인질 12명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방영했다. 이 동영상은 탈레반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질의 육성은 몇 차례 공개됐지만 동영상은 처음이다.

1분 남짓 분량의 동영상 내용은 이랬다. 카메라가 인질 12명을 한꺼번에 잡는다. 여성 5명은 앞줄에 앉아 있고, 뒷줄에 여성 4명과 남성 3명이 서 있다. 여성은 모두 '히잡'을 썼다. 카메라는 오른쪽 아래에 앉은 여성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천천히 훑어간다. 인질은 한마디 말도 없고,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성 인질 한 명을 클로즈업한 뒤 잠시 고정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인질들의 얼굴을 반복해 보여준다. <동영상은 joins.com 참조>

여성 인질들은 왜 히잡을 쓰고 있었을까. "탈레반이 무슬림 종교 차원에서 강제로 씌웠다"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아프간 현지 경험이 있는 이들은 "보수적인 아프간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외부 활동을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이란, 사우디에서도 여성의 히잡 착용은 거의 의무화돼 있다. 4년간 아프간에 머무른 이병희 굿네이버스 국제협력부 과장은 "봉사활동을 온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히잡을 준비해 쓰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이태원) 김환율 사무처장도 "안전 때문에 스스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충격 강도 높이기=표창원(범죄심리학) 경찰대 교수는 "탈레반은 강도(强度)의 차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는 것은 듣는 것보다 강하다. 동영상은 사건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탈레반은 인질들의 상황을 제한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노출함으로써 유리한 위치를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출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4월 프랑스 구호활동가 두 명을 납치했을 때도 탈레반은 비슷한 절차로 인질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홍성열(범죄심리학) 강원대 교수는 "유괴 사건에서도 아이의 생존을 확인한 부모는 사건 해결을 위해 조급하게 덤비게 돼 있다"며 "동영상은 '한국이 액션을 빨리 취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다음 단계에는 동영상과 함께 인질들의 입을 빌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상 문법을 안다=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영상커뮤니케션을 전공한 류재형 박사는 "공포영화의 영상 문법을 충실히 따른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삼각대에 고정돼 있지 않다. 사람이 직접 들고 촬영했다. 이를 '들고 찍기'라고 한다. 촬영자의 호흡에 따라 카메라가 흔들리며, 어두운 밤에 찍으면 초점이 불안정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보는 사람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류 박사는 "조명기술이 상당히 취약해 뒷사람의 얼굴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만약 이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예전 공포영화의 '얼굴 없애기' 기법과 비슷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상 비평가 입장에서 볼 때, 촬영자가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인식 기자

◆히잡=얼굴은 드러내고 머리 부분만 가리는 무슬림 여성들의 스카프. 얼굴과 머리를 덮는 베일(veil)을 총칭하기도 한다.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을 '니카브', 눈 부위까지 망사로 돼 있어 사용자의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것은 '부르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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