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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로 달려간 기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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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못 박아 놨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직업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서도 처신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판·검사를 하다 퇴직하고 개업한 변호사가 그렇다.

몇 달 전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나 선후배 판사와 검사를 찾아가 사건을 부탁하면 당사자들로서는 인간적으로 모른 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직 판·검사들도 속으로는 “나중에 변호사 되면 나도 마찬가지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전관예우’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한다. 전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한, 그 반대편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선 정말 억울하고 기막힐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길 하는 건 ‘전직(轉職)의 윤리’를 따져 보고 싶어서다. 대선 철이 되면서 요즘 언론계는 뒤숭숭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특정 정치인의 대선 캠프로 간 신문사·방송사 기자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캠프에는 20여 명의 기자가 합류해 있다. 같은 당 박근혜 후보 쪽 캠프에도 그 정도 숫자의 언론인들이 뛰고 있다.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여권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에도 5~6명의 기자가 가세했다. 여야 대선 주자 캠프로 간 기자를 다 합치면 60~70여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마 역대 선거 사상 최다 인원일 것이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상당수 기자는 현직에서 곧바로 대선 캠프로 점프했다. 엊그제까지 후배들이 써 온 해당 정치인 기사를 출고하고, 관련 사설을 쓰던 분들이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꿔 특정 정치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선 “그동안 기사와 사설은 어떻게 쓰고 방송은 어떻게 해 왔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마음이 특정 후보 콩밭에 가 있는데 공정성을 어떻게 유지했느냐는 질문이다.

대선 주자들이 기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기자들은 순발력이 있고, 현장감이 빠르다”는 게 가장 흔한 답변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마 ‘전관예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신문·방송사 기자들을 많이 확보한 캠프일수록 대(對)언론 로비가 쉬울 건 뻔하다. 로비는 결국 ‘얼굴 장사’고 누구든 옛 동료를 모른 체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언론사 동향 파악도 쉬워질 테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기자들이 대선 캠프로 간 이유도 개인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베팅 심리’가 깔려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기기만 하면 크게 챙긴다”는 기대감 말이다. 반대로 내 후보가 패배하면 한마디로 ‘꽝’이다. 그러니 격렬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든 선거는 사람들을 비이성적인 흥분상태에 빠지게 한다. 대통령 선거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올해 대선은 아직 멀었지만 벌써부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고 있다.

시민운동을 한다는 일부 인사는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 TV등에 나와 ‘시민사회’의 고상한 논리로 정치권을 질타하던 그들이다. 일부 교수도 대놓고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부디 강의 시간에만큼은 누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헛소리’ 하지 말기를 바란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업 선택은 자유고 기자들이 정치를 하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최근엔 폴리페서[poli+(pro)fessor]에 이어 폴리널리스트[poli+(jour)nalist]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런 분위기가 현직에 남아 있는 후배 기자들에게 적잖은 ‘공정성의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할 것 같다.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