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채굴 계획서 내라"… 셸社의 인재채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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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채굴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까. 마케팅팀은 비용 대비 수익률을 빨리 뽑아줘. 이슬람 국가에서 수출 활로를 찾는데 법률적 문제는 없을까."

최근 포르투갈 남부 관광지 알가르베의 한 호텔 지하 회의실. 화공학.경영학.국제법 등 각각 전공이 다른 유럽 10여개국의 대학졸업반 40명이 인도양 해상의 이슬람국 '구라미'의 석유자원 개발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국적 석유기업 셸의 2005~2010년 5년간 사업계획을 작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도상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구라미란 나라는 찾을 수 없다. 이날 토론은 실제로는 셸의 2004년 신입사원 공채시험의 첫날 과제였던 것.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8일 세계 최고의 인재만을 뽑으려는 셸의 신입사원 채용시험의 전 과정을 5일간 합숙훈련을 곁에서 지켜보며 참관기를 실었다.

가상 산유국 구라미를 상정, 취업 응시생들에게 석유사업 전반의 진행과정을 시험과제로 안겨주는 것은 셸의 독특한 채용법이다.

유럽 전역의 지원자 7백명 중 1차 관문을 뚫고 2차 합숙시험에 참가한 응시생들은 첫날 식사할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이들은 둘째날 자신들이 마련한 사업계획을 들고 깐깐한 셸의 투자자 역할을 맡은 셸 간부 세 명을 찾아가 4천만달러의 투자를 요청하는 '진땀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마지막 날에는 셸의 고위 임원진 앞에서 현재 경쟁사가 갖고 있는 구라미의 채굴사업권을 어떻게 사들여올지 그 방법을 제안하는 관문을 넘어야 했다. 결국 5일간 합숙 뒤에는 40명의 절반만이 셸의 신입사원으로 채용됐다.

셸의 채용 방법은 다국적 석유회사의 통상적인 일상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회사와의 '궁합'이 맞는지 입사 지원자들이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신입사원 채용 비용이 평균 25%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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