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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장" 구출 작전 봉쇄용 "유엔에 전해 달라" 미국 압박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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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질들의 육성을 공개한 탈레반의 의도는 무엇인가. 임현주(32.여)씨에 이어 28일 유정화(39.여)씨의 육성이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해졌다. 분량은 2분가량이었다. 유씨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구해 달라"며 절박한 심경을 영어로 전달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인질을 잡고 있는 탈레반의 치밀한 각본에 따라 단어 하나까지 직접 지시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를 범죄심리학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피랍자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의도적 정보 흘리기(Arbitrary Leaking)'라고 규정한다.

강원대 홍성열(범죄심리학).표창원,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의 도움을 얻어 유씨의 육성 내용과 탈레반의 의도를 분석했다.

◆"한 명씩 죽이겠다고 위협한다"=인질의 절박감과 위기감을 부각시켜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는 탈레반의 뜻이 담겨 있다. 이로 인해 '뭐든지 요구를 들어주고 빨리 인질을 구출하라'는 국내 여론을 조성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매일 이동하고 있다'는 부분은 역정보이거나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위성 추적, 인질의 탈출과 부상 등 이동하는 데 따르는 위험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장소를 바꾼다고 알려 진압 작전을 교란하려는 노림수도 있다고 보인다. 매일 험준한 산악을 옮겨 다닌다는 사실을 암시해 추적을 따돌리는 효과도 있다.

탈레반은 "우리는 과일만 약간 먹고 있다"는 유씨의 말을 통해 식품과 의약품 같은 물자를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산악지역에서 장기간 생활한 탓에 탈레반들은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질 중에는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이 이른 시일 안에 타결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유엔과 유네스코에 구해 달라고 전해 달라"=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아프간, 특히 미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국제기구에 구출을 호소해 국제 여론을 조성하고, 이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탈레반 죄수와의 교환 요구를 묵살할 수 없게 하려는 의도다.

유네스코를 언급한 부분은 특이하다. 교육.과학.문화 등 인간 복지와 관련한 국제기구를 언급함으로써 이번 사태의 초점을 인질 인권으로 맞추려는 의도다. '전쟁이 없으면 좋겠다'는 대목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침략국 미국과 맞서고 있는 '전쟁 상황'을 알리려는 의도로 언급된 듯하다.

유씨가 "그들은 모두 무장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다국적군이나 아프간 군대의 진압작전 또는 군사작전을 경고한 것이다.

권호.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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