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실세」비리 파헤쳐질까/동화은 비자금 파문 정치권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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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자금유입 상당부분 확인/재산해외도피 도운 혐의도/검찰 “안행장 교묘한 진술로 수사 애먹어”
안영모동화은행장 비자금 조성사건이 정치권에 태풍으로 몰아치고 있다. 「설마」하던 수사결과가 결국 정치권쪽으로 불똥이 튄 것이다.
검찰조사결과 안행장이 조성한 비자금은 뭉칫돈으로 6공 실세들에 전달됐고 특히 정권말기인 92년에 집중적으로 제공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정치인·전직 고위관료들이 은행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더 큰 의미는 동화은행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민자당 L의원,당시 청와대 요직에 있던 K·L씨,당시 경제각료 L씨등이 6공 실세또는 실세와 가까워 주목받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안행장 비자금조성 수사가 곧바로 6공비리 수사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92년 집중 제공
김영삼정부는 출범초기 특정인을 겨냥한 파헤치기식 6공비리수사는 하지않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공언이 명백히 드러나는 범법사실에 대해서까지 눈감아주겠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따라서 일부러 파헤치지는 않겠지만 사정작업 과정에서 과거 비리가 드러날 경우 묵인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고,만일 비리당사자들이 6공실세들이어서 수사가 6공핵심으로까지 비화된다해도 기를 써가며 진화작업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안행장을 구속한후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부분을 집중수사,6공실세들의 혐의사실을 상당부분 밝혀내고도 이들 정치인·고위관료들을 곧바로 소환해 사법처리하는 수순을 밟지 못하고 있다.
안행장이 6공실세들에 거액을 준 사실을 인정하고도 조사를 받을때마다 돈을 준 시기·액수등에 대해 조금씩 틀리게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안행장은 증거가 될 부분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답변을 회피하는등 수사진행에 혼선을 자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물먹이기
검찰은 안행장의 이같은 태도가 경제사범들이 흔히 사용하는 「검찰 물먹이기」수법의 하나로 보고있다.
지능범들에게 말려들어 이들의 진술을 그대로 믿고 조서를 작성했다가는 대질신문을 벌이거나 법정에 갔을때 진술내용과 정반대되는 증거를 들이대며 전체 진술자체를 뒤집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사대상이 모두 내로라하는 과거정권의 실세·거물급들인 만큼 검찰은 완벽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기위해 수표·계좌추적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증거를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일단 확실한 증거만 확보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관련자를 소환해 속전속결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임시국회 회기중이라는 점도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회회기중 현역의원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국회동의가 필요하고 같은 정치인의 입장에서 수사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치입김”우려
검찰은 동화은행이 이들 6공실세들의 재산해외도피를 대행해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중이다.
만일 재산해외도피 부분이 드러난다면 6공실세들의 정권말기 자금이동과정은 대부분 드러나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까진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계속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검찰수사가 과거처럼 「죽이고 살리는」기준을 정치적 고려에 따라 정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검찰이 정치권의 외압에서 벗어나 새시대의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고려가 아니라 국민들에 대한 책임만을 의식하고 이번 정치인 뇌물사건을 남김없이 파헤쳐 스스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검찰내부 목소리도 높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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