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 전쟁터 마케도니아|3차대전 "불씨"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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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엔은 지난 9일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잠정적 이름을 갖는 나라를 1백81번째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인구 2백30만명에 면적이 남한의 4분의1 크기인 2만5천평방km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지만 마케도니아의 유엔가입은 유럽의 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냉전종식 이후 유럽에서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민족간 분쟁을 막아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첫 사례인 것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에서 전쟁의 불씨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마케도니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내전과 달리 인접국들을 대거 전쟁에 끌어들일 것이라는 점에서 「제3차세계대전의 불씨」라고 지적하고 있다.
복잡한 민족구성에 따른 민족갈등과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인접국들의 이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는 일단 방아쇠만 당겨지면 그대로 국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국명불만>
마케도니아가 구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은 91년 11월. 같은해 9월 독립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돼 투표자의 96%가 독립에 찬성했다. 그러나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은 투표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마케도니아의 독립이 국제사회에서 공인되기까지 국민투표후 꼬박 1년9개월이 걸렸다. 국제회의에서 독립국가로 공인받는데 이처럼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국명에 「마케도니아」라는 단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리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유럽공동체(EC)회원국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효과적으로 봉쇄해 왔다. 그리스는 알렉산더대왕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북부에 수도를 두고 발전했던 나라라는 이유를 들어 신생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주장은 마케도니아라는 독립국가가 수립될 경우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토적 주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신생 마케도니아 국경은 구유고연방을 창설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의해 확정됐다. 티토는 제2차대전 때까지 남세르비아로 불리던 이 지역에 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케도니아인들의 자주권을 인정했다. 티토의 정책은 유고 영토를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까지 확대하려는 야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1946년부터 3년간 계속된 그리스 내전에서 티토는 그리스 공산군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마케도니아의 국명을 둘러싼 그리스와의 분쟁은 제네바 유고평화회의공동의장 사이러스 밴스와 로버트 오웬의 중재로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잠정적으로 사용하되 조만간 국명을 새로 정한다는 전제아래 유엔에 가입하는데 그리스가 동의함으로써 일단락됐다.

<방아쇠는 알바니아>
한편 마케도니아는 국내 민족들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어 내전가능성도 매우 크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알바니아인 문제.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인은 정부 각료직을 4개나 맡고있고 의회1백20개 의석중 24석을 차지하는등 정치적으로 거의 차별받지 않았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독립한후 극우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마케도니아혁명기구(VMRO) 가 의회에서 34석으로 최대 의석을 차지하는등 마케도니아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어 알바니아인들에게 불안감을 주고있다.
알바니아인들은 지난해 10월 정부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마케도니아에서 독립하는 문제를 놓고 투표를 강행했다.
알바니아인 문제는 특히 이웃한 세르비아의 코소보자치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의 갈등관계에서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코소보자치주는 인구 2백만명중 90%가 알바니아인으로 이들은 오래전부터 분리독립을 추구해 소요가 계속됐으며 세르비아는 90년 탱크를 동원해 자치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한 후 강압통치를 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이 종식되면 세르비아는 이 지역에서 알바니아인들을 몰아내는 민족청소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마케도니아내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의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다시 세르비아에 의한 마케도니아 침공을 촉발할 수 있다.
유엔이 지난해말 구유고연방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국경지대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것도 이 지역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경제 붕괴상태>
불가리아 역시 마케도니아에서 일단 전쟁상황이 벌어지면 쉽게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지역을 두고 1912년과 1913년에 일어난 제1차, 제2차 발칸전쟁에서 이 지역의 영토를 대부분 잃어버렸다.
뿐만아니라 수백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터키도 마케도니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즉각 개입할 것임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마케도니아를 승인한 것은 우선 이 지역에서 전쟁발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구유고 연방 6개 공화국중 가장 가난한 공화국이었던 마케도니아는 2년전 유고내전이 발발하면서부터 경제가 말 그대로 붕괴하는 어려움을 겪고있다. 이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국내적으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세력들이 성장할 수 있는 온상이 되어왔으며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등의 원조와 투자를 애타게 요청해왔다.
국제사회의 승인은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가 긴급한 경제원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로써 구유고연방 마케도니아의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토양은 개량될 수 있다. <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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