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좋은 것만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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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엔화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미 동경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백10엔대가 깨졌고 이대로 가다간 달러당 1백엔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벌써 올들어서만도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11%나 평가절상됐다.
엔화 강세는 일본경제의 막강한 경쟁력에 뿌리를 둔 장기적 추세라 볼 수 있다. 엔화는 우리 원화에 대해서도 크게 오르고 있다. 이미 1백엔대 7백15원을 넘어섰다. 올들어 12.2%나 오른 것이며 작년 한해 상승률의 3배가 넘는다. 지금이야말로 엔고의 진행과 이에 따른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 확보 및 해외시장 개척전략을 관민차원에서 매우 신축적이고도 활발하게 점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에 대한 정책이 개혁의 물결에 그냥 묻혀버리거나 당국의 관심권에서 벗어난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이번의 엔고 대응은 지난 80년대 중반의 미숙한 엔고전략에서 교훈을 얻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를 그저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이야말로 엔고불황 시기에 경제체질을 더욱 단련시키는 훈련을 네차례나 거듭해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방만케하다간 오히려 해외에서 우위를 자랑했던 몇가지 품목들의 시장까지 빼앗길 우려가 없지 않다. 85년이후 엔고 등 이른바 3저현상이 지속될때 우리는 오로지 원화절하에 따른 가격경쟁력만으로 수출을 늘렸다. 호황에 도취되어 통화나 금융외환 측면의 정책변화 시도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의 엔고는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나 전기전자·철강 부문 수출에서 가격경쟁력을 갖게되나 그 이외의 부문에서는 여전히 고전이 예상된다.
일본은 가격경쟁력이 없는 제품을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으로 많이 이전하고 첨단기술의 고부가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엔화강세가 꼭 한국제품의 수출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핵심부품을 수입해야 하고 또 이미 지고 있는 차관도 많아 엔화강세가 한국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면도 있다. 따라서 엔화강세를 85년때와 같이 새로운 호기의 도래만으로는 볼 수 없다. 우리가 대처하기에 따라선 찬스도 될 수 있지만 또한 위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엔고에 의한 소극적인 가격경쟁력 제고보다는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 및 임금안정 등을 기반으로한 제조원가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결국 경쟁력있는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차근차근 이뤄지지 않고서는 엔고는 수출에서 반짝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른 수건을 짜듯 경영을 더욱 합리화하고 2만여개 기업의 도산에도 불구하고 신산업이 계속 태동하는 일본의 구조조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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