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 소리예술단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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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9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음악당.
연미복 차림의 젊은이가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무대로 나왔다.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자 그는 자신감 있게 바이얼린을 켜기 시작했다. 그가 모리스 라벨의『치가느』를 현란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연주해내자 짧은 순간 정적이 장내를 휩싼 뒤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바이얼린 독주를 한 이 젊은이는 시각장애인인 김종훈군이었다.
이날 펼쳐진 한국장애인소리예술단의 정기공연은 여느 연주회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우선 연주자들이 대부분 짙은 선글러스를 낀채 안내인의 인도를 받아 무대로 나왔다. 이들이 앞 못보는 시각장애인인 까닭이다.
객석 분위기도 달랐다. 정장차림의 젊은이나 중년보다 가족단위 관객이 많았다. 머리결이 희끗희끗한 할머니도 보였고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연주회가 가장 달랐던 점은 12개 연주·공연 순서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따뜻하면서도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어렵사리 서울 공연을 가진 한국장애인소리예술단은 시각장애인들이 중심된 예술단체다. 수화합창과 무용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단원중 10여명은 월급을 받는 「전문연주인」이다.
지난 86년 10월 첫공연을 가진 이후 정기공연만 이번으로 일곱번째. 지방 초청공연 및 장애자 돕기 자선공연등을 꾸준히 해왔고 일본·미국·캐나다등 해외공연도 가져 호평을 받은바 있다.
창단 때부터 예술단을 이끌어온 황재환단장(46)은『인간에게 이런 능력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정상인들에 비해 음악수준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황씨 자신이 사고로 시력과 함께 오른팔마저 잃은 장애인으로 대구의 맹학교인 광명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이날 클라리넷을 연주한 이상재씨(27)는 현재 미국피바디음대 박사과정 재학중으로 공연을 위해 미국에서 달려온 경우다.
그는『독주는 물론 실내악합주를 할 때도 지휘를 보지 못하므로 점자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하는 것이 어려움』이라면서 『대신 남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말한다.
이번 무대에는 농아 소년소녀들이 출연, 레코eld 음악에 맞춰 입이 아닌 손으로 합창(?)을 해 숙연한 감동을 연출했고 수준급의 피아노 독주와 금관5중주 등도 들려줬다.
1부 끝순서는 황단장의 독창이었다. 그는 의수를 늘어뜨린채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그의 바리톤에 실려 들려오는 성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실만큼 감동적이었다.
이들의 공연이 일부 미숙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예술의 존립근거인 관객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째서였을까.
부정과 허명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 진실과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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