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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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급식기와 화장품 두 가지 상품의 조합을 생각해보자.
얼핏 서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생각은 남자들의 경우다.
여자들, 특히 주부들은 달라 이 두 제품이 그 주부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래서 두 조합을 아무 부담없이 받아들인다.
고급식기로 유명한 한국도자기가 91년 로제화장품을 생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자기판매점을 들르는 주부들을 상대로 고급위주의 화장품을 선보인 것이 맞아떨어져 이 회사의 화장품매출은 지난해 50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3배가 넘는 1백62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신규사업 하나가 운 좋게 성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일반기업들이 곧잘 빠지기 쉬운 「마키팅 근시」라는 함정을 극복한 사례다.
한국도자기 직원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도자기만 만드는 회사, 또는 화장품도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자기를 생산할 때부터 「여성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만드는 회사」라는 생각을 가졌으며 이 때문에 화장품에도 진출했고 현재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또 다른 사업다각화까지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팅 근시」는 회사의 사업영역을 너무 좁게 규정, 제품자체의 품질향상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여기에 안주하다 나날이 변하는 소비자들의 기호, 기술수준에 부응하지 못하고 서서히 몰락해 가는 현상을 지적하는 용어다.
철도만이 대중운송수단이라고 생각, 자신들의 사업을 운송업이 아닌 철도업에만 국한시켜 결국 버스·비행기운송을 남들에게 다 빼앗기고 몰락한 영국의 철도회사들, 원료업이라는 생각없이 석유만을 고집하다 천연가스 등장으로 위축돼버린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마키팅 근시의 예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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