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생선가게 고양이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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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립교육평가원은 국가가 교육을 위해 실시하는 일체의 고사를 위한 출제와 시험관리업무를 맡는 교육부 산하기관이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두차례의 국가고사뿐 아니라 각종 검정고사,국비유학시험,독학자 학위 취득시험 등의 출제와 입시관리 업무를 도맡고 있다.
따라서 공명정대한 국가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보안유지가 평가원의 생명이고 필수적인 업무자세여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평가원이 지난해 1월 후기대 입시문제를 도난당해 세상을 벌컥 뒤집어 놓더니 또 1년이 지나 이번엔 정답을 관리하는 평가원 장학사가 입시생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해괴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듣는 국민으로서는 도대체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울화가 치밀어 일체의 교육을 작파하고 싶은 통분마저 느끼게 된다. 시험지를 관리해야할 관리들이 손을 놓고 있고 학력고사 정답을 관리하는 장학사가 은밀히 입시생에게 정답을 알려주었다니 평가원이 생선가게 고양이인가.
한마리 미꾸라지가 맑은 물 전체를 흙탕물로 더럽히는 법이어서 한사람의 부정이 모든 국가시험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동안 온갖 시험에 낙방했던 사람들도 그러면 그렇지,그동안 무슨 흑막이 있었겠지 하는 불신을 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험부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국가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엄정한 수사가 진행되길 촉구한다.
국립교육평가원이 84년 설립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되지 않는 세월 속에서 평가원 나름대로 생색나지 않고 힘든 일을 빛도 보지 못한채 묵묵히 일해왔다. 또 내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한 문제모형 개발과 새 제도에 따른 마찰없는 적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보이지 않는 노고마저 이번 사건으로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이번 정답 유출사건은 평가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나아가 공직사회 전체의 나태하고 무책임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사례라고 본다. 경천동지할 시험지 유출사건이 터진지 1년이 지나도록 내부적 개혁이나 철저한 점검도 없이 해당 인사만 문책하고 들끓는 여론만 잠잠해지면 또다시 일상의 나태로 돌아가버리는 공직사회의 기강해이가 곧 이런 절대절명의 사건으로 다시 터져나오는 것은 아닌지,공직사회 전체가 깊이 자성할 일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유지체제를 강구하고 점검해야 한다. 모든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교육부라는 국민적 지탄을 벗을 수 있는,진정 뼈를 깎는 자정과 공직자상의 확립을 위한 획기적 정화노력이 교육부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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