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천국에서 보낸 꿈의 1만시간

중앙일보

입력


정열의 삼바·탱고, 열대 정글·아마존강, 거리마다 넘실대는 음악,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인 민족성, 인디오…. 이런 이미지의 공통분모로 남미(南美)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유럽이 세련미의 극치로 손짓한다면 남미는 때 타지않은 건강성으로 발길을 유혹한다. 하지만 여행지로서 아직은 우리에게 산 설고 물 선 미지의 땅이다. 여기, 남미 14개국을 1만 시간동안 ‘대책없이 휘젓고’ 다닌 한 사람이 있다. ‘엽기 여행가’ 박민우(34). 그를 만났다. 

#어디로? 그냥 가는 거야
“배부른 소리 그만해. 먹고 살기 바쁜데 웬 여행 타령…” “ 가려면 결혼이나 하고 가! 에미 속 좀 작작 태우고….”
어머니의 하소연(?)을 뒤로 한 채 2005년 박 씨는 통장 잔고 259만원을 들고 남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여행에 ‘목 매는’ 이유는 뭘까.
“티벳 속담 중 이런 게 있어요. 내일과 죽음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올지 모른다는…내 주변 2명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니…살아생전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떠남이더군요.”
그렇다치고, 하고 많은 곳 중 왜 ‘남미’를 택했을까? “물가가 싸니까”란다. 마치 ‘허무개그’ 같은 문답이다. 갖고 간 ‘푼돈’ 외에 여행기를 연재하는 잡지사의 원고료만 믿고 떠났기 때문이다. 기자가 멋쩍어 하자 살짝 덧붙인다. “남미에 가면 아주 진하고 신명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는 “콜롬비아는 집집마다 문앞에 놓인 스피커를 통해 미친 듯이 음악이 흘러 나와요. 배낭 무게에 짓눌려 지나가다가도 나도 모르게 짐과 함께 춤을 추게 되죠. 날아갈 듯, 노래하듯 신명나게 춰요”라고 남미 자랑을 시작한다.

#남미의 매력, 그 진실과 오해
그는 돈복은 몰라도 인복 만큼은 남 못잖다고 자부한다. 1년 2개월의 여로에서 수백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무 명과 잊지 못할 인연을 맺었다.
“사람과 사람의 부딪힘이 여행의 참맛이죠. 그들은 나를 ‘이방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더군요. 그야말로 거침없이 내 공간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는 “위험한 일은 그들 내부에서 일어날 뿐 일반 관광객과는 상관없어요. 물론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죠. 칠레에 있던 어느날이에요, 중국집 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어 밤 12시에 길을 나섰다가 강도를 만났어요. 하지만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는 건 파리나 로마에서도 위험한 일”이라며 남미가 무법천지라는 편견을 일축한다.
“남미는 못살고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느냐”는 우문을 던지자 “우리나라의 70,80년대를 떠올리죠. 하지만 쫓기듯 사는 우리네와 달리 늘 즐거운 표정이에요. 일견 게을러 보일지 몰라도 낙천적이고 관대하고 여유롭죠. 국민소득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행복의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되더군요” 라는현답이 돌아왔다.

글 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 사진 제공 =박민우

엽기 여행가 박민우씨
1973년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유행통신><월드트래블>등에서 글 쓰는 일을 함. 2005년 남미로 여행 떠남. <유행통신>에 남미여행기가 연재되면서 엽기 여행가로 인기. 올해 <행복이 별처럼 쏟아지는 구멍가게>와 <1만시간 동안의 남미> 출간.

■ 박민우씨가 추천하는 남미 여행지 3곳


▶천상의 물빛-과테말라 세묵 참페이
‘성스러운 물’이라는 뜻을 지닌 계곡으로 과테말라 절경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변동으로 계단식 폭포가 만들어졌다. 상류는 거대한 물살이 위용을 자랑하며 하류는 바닥까지 훤히 보여 수영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원시 속에서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세묵 참페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박쥐동굴도 강추한다. 하루는 수영, 하루는 주변 관광지 탐방 그리고 하루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그물 침대에서 낮잠을 자는 건 어떨까? 영국인 주인이 만든 호텔 엘 레티로는 이곳 여행객의 절반 이상이 머무르는 곳이다.


▶너무나 예쁜 도시- 멕시코 과나후아토 
예쁜 도시가 많기로 유명한 멕시코, 그 가운데서도 으뜸은 바로 과나후아토다. 1554년 건설된 식민 도시로 당시 가장 풍부한 은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산을 중심으로 구불구불 터널이 이어지고 미로처럼 엉킨 길들이 이채롭다.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한 집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어맨다. 치안 상태가 좋고 물가도 저렴한 편. 밤늦게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밤길을 거닐며 낭만을 만끽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말마다 펼쳐지는 거리공연도 큰 볼거리. 소규모 악단 ‘마리아치’ 공연은 돈키호테 복장을 하고 초콜릿처럼 달콤한 화음을 맞춘다.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생가도 있다.


▶아름다운 신들의 섬- 파나마 산 블라스
미국 인기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주인공들이 가고자 했던 이상향 파나마. 350여 아름다운 섬이 모인 산 블라스는 그 중 백미다. 화려한 호텔이나 완벽한 시설은 없지만 그점이 오히려 매력이다. 수심 10m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쿠나족이라는 인디언들이 자치구를 이루어 살고 있어 인디언의 전통적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야자수 나무 스무 그루 정도면 꽉 차는 초미니 무인도의 오두막은 관광객을 유혹한다. 숙소와 식사 해결에 하루 2만원이 채 안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