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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다 읽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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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08면

해리포터 우표

전 세계 온라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리 포터 팬사이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중 팬들 사이에서 ‘공식 팬사이트’로 통하는 곳은 ‘머글넷’(MuggleNet.com). 국내에선 카페 회원이 11만 명에 달하는 다음 카페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가 가장 인기다.

팬들이 새 얘깃거리 만들어가는 팬덤 문화

이런 팬사이트들에선 인기 게시물 조회 수가 수만 회에 이른다. ‘9와 3/4 승강장’ ‘플루 가루 네트워크’ ‘트리위저드 컵 대회’ 등 독특한 메뉴명이 우선 눈에 띈다. 소설의 팬사이트답게 중심 활동은 역시 글짓기이다. ‘영혼 볶음 제조법’ 등 마법 주문 새로 만들기, ‘성 뭉고 병원에 성형외과 신설’ 등 예언자일보에 올릴 기사 작성해 보기, ‘만약에 해리의 부모님이 살아있다면’ 등으로 시작하는 스토리 이어가기 같은 다양한 창작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워낙 독특한 소품들이 발달하고 수많은 인물 설정에 에피소드가 다양하다 보니, 퀴즈 내기와 맞히기 게임도 활성화된다.

‘왜 시리우스는 유령이 못 되었나’ ‘스네이프는 릴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치욕적 기억을 펜시브에 넣었던 게 아닐까’ 등 소설에서 얘기가 좀 부족했거나 모호하게 지나간 부분들에 대해선 토론이 벌어지고 곁가지 스토리를 파생시키거나 앞으로 나올 소설 내용을 예상해 본다. ‘해리 포터 부모의 십대 시절 이야기’와 같은 프리퀄(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의 과거 이야기)이 만들어져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들을 통칭해 팬 픽션(팬들이 창작하는 소설), 줄여서 ‘팬픽’이라고 부른다.

스토리는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다. 자동차 추격 신에 폭발 장면과 근육질 격투가 등장하는 미국식 액션물로 다시 쓰기도 하고(‘래리 포터’), 원작을 거침없이 뒤집는 걸쭉한 입담과 유머로 세상을 풍자하기도 한다(‘배리 트로터’). 이들은 주로 웹에서 활동하며 마니아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왔지만 최근엔 대형 출판사와 계약하는 등 주류로 떠오르며 저작권 문제 해결도 모색하고 있다.

원저자 J. K. 롤링은 팬 픽션, 혹은 패러디 작품들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팬덤 특유의 연애 일색 포르노, 동성애 묘사 등 성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질색하는 분위기. 그러나 일부 ‘어둠의 세력’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2차 창작물들과 팬덤 문화는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씩 기다려야 새 시리즈를 맛볼 수 있었던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교류의 창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학 창작의 한 분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게임.완구.놀이공원까지 뻗는 '마법의 경제학'

해리 포터는 원작의 분량 자체가 방대하다(오리지널은 7권이나 국내에선 긴 소설을 분권하는 출판계 관행 때문에 시리즈가 스무 권 이상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게다가 한 편이 나올 때마다 양장본·보급판에 수집가를 염두에 둔 박스 세트, 오디오북 등 여러 판본이 추가로 나왔다. 여기에 영화와 관련된 화보 책자만 수십 종이다. 마법 사전, 신비한 동물 사전, 퀴디치 역사 등의 정보 안내 책자와 문화 비평, 해설서도 여러 종 출간되고 있다. 철학·과학·영어 등의 교육용 서적도 해리 포터를 적극 이용한다. 이미 나온 영미권 관련서만 200여 종. 국제관계·경제경영·종교서도 등장했다.

영화와 게임으로 확장되는 건 기본이다. 다섯 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얼마 전 개봉됐고 7편까지 제작 계획이 완료됐다. 게임 소프트웨어도 5편까지 나왔는데, 본편 아닌 퀴디치 월드컵(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하는 구기 종목) 게임이 가장 재밌다는 중평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영감을 받아 2002년 결성된 미국의 펑크 록 밴드 ‘해리 앤 더 포터스’는 벌써 여섯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어둠의 마왕도 록음악은 막을 수 없지’ ‘마법부 장관은 바보’ ‘새 마법사를 위한 송가’ 등이 내세우는 곡.

의류·완구·문구류도 빼놓을 수 없다. 액세서리나 모형 같은 기념품도 인기지만 특유의 묘한 기능을 갖춘 것들이 마니아들의 표적이 된다. 버터 맥주·귀지(!) 맛 강낭콩 젤리·개구리 초콜릿 같은 간식류, 마법사들의 필기구인 깃펜과 마술 지팡이, 원격조종되는 빗자루 등. 주인공 해리와 론이 늘 기숙사 거실에서 승부를 겨루던 마법의 체스도 나왔다. 지난해 말에는 듀크대학 연구팀이 빛을 방해하도록 만든 특수 물질을 선보여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가 발명됐다’며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2009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워너브러더스가 해리 포터 테마공원을 만든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돈을 걸라는 영국 도박업체도 등장했다. 해리 포터의 자살 쪽에 베팅이 집중되었다는 후문이다.
어린이 대상 콘텐트의 상업화가 너무하다며 놀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작 소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워낙 막대해서 거기 비하면 이 모든 부가 상품들의 수익은 미미한 수준일 뿐이라는 점이 오히려 경이롭다.

이수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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