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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쓴맛, 빠져보시렵니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호 09면

제목 참 썰렁하다. 『아이스 헤이번(ICE HAVEN)』(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이라. ‘차가운 피난처’라니 똑 미국 어느 현대도시 얘기 같다. ‘아이스 헤이번’이란 마을에서 벌어진 한 꼬마의 실종사건을 따라가는 시선은 문자 그대로 ‘초현실적’이다. 파편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렇게 그렸다 저렇게 그리는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이건 한 작가가 그린 게 아니야’ 싶다가도 다시 길을 찾으니 신기할밖에. 한 쪽 넘기기가 이렇게 어려운 만화는 처음이다.

굳이 쉽게 풀자면 미국 일간지의 일요판 만화면을 연상하면 된다. 4컷, 8컷 등 다양한 장르와 화풍을 지닌 짧은 만화가 촘촘하게 늘어선 신문 지면을 보는 것 같다. 잘게 으깨져 부서진 조각 같은 현대인의 나날이 만화 형식과 맞아떨어지는 걸 보는 상쾌함. ‘오도독’ 소리 나게 즐겁다.

만화 속 아이들은 조숙하기 이를 데 없다. 징그러울 지경이다. 한심한 이웃을 비웃는 주민 모두가 사이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차라리 뭔가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조각난 만화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언뜻 느낌이 온다. ‘외롭고 쓸쓸해도 나는 안 울어’ 식의 끈질긴 ‘살아있음’.

오죽했으면 만화연구가 김낙호씨가 이 책의 독자에게 “여러분은 하필이면 바로 그 세상사의 지리멸렬함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이상한 작품을 펼쳐 버리신 셈”이라 했을까. ‘연옥의 모자이크’란 한마디는 좀 심하다 해도 ‘과연 누가 연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독후감이 된다.

『고스트 월드』또한 뜬금없이 뒷머리를 때린다. 아랫도리 인생, 사회 낙오자들의 삶이 큰소리 없이 그려진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겁나는 경지다. 신랄하기보다 뜨끔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만화는 십대 소녀의 냉랭한 성장기를 다뤘다. 그래서 소녀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전설이 돼버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문제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소년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년·소녀를 가를 문제는 아니다. 뭉뚱그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이 있다 치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아직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두 청소년에게 이 세상은 ‘유령의 세계’, 즉 ‘고스트 월드’인 것이다.

벌써 잊으셨는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그때, 동시에 뭐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던 그때, 경계선상에서 헤매고 다녔던 그 이상한 열기의 계절. 이리 쿵, 저리 쿵 부딪치며 수많은 상처를 입고 난 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이십 대의 어드메쯤 와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해준씨는 이 만화에 “무모하고 무례해서 아름다운 청춘을 위한 찬가”란 제목을 붙여줬다. ‘어슬렁거림’의 그 이상지대를 통과하고 나면 어른이 되지만 늘 무언가를 찾아다니던 그 시절의 낙인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아이스 헤이번』(2005)과 『고스트 월드』(1997)는 한 만화가가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몹시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 몇 년의 시간차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작가의 실험정신 또는 지루함을 못 참는 성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일 똑같은 걸 그리고 있을 성격이 아닐 것 같다.

『고스트 월드』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대사로 끝난다. “너도 이젠 예쁜 아가씨가 다 됐구나.” 어슬렁거림이 끝나고, 아니 멈추고 어딘가 한 유형에 고착되는 순간, ‘유령의 세계’는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유령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신랄하고 발칙하며 썰렁한 이 만화 지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잠시 당신을 다시 찾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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