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연의 풋풋한 에너지 저장고, 토마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호 28면

어릴 적 아침에 채 눈을 뜨기도 전에 부지런한 어머니는 몸에 좋다는 토마토 주스를 갈아서 입에 대주곤 하셨다. 그때는 토마토가 왜 그리 싫었던지 정말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성의를 무시할 만큼 무심한 딸은 아니라서 고통의 비명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고 원샷을 하곤 했었다. ‘어차피 마셔야 할 것이니 맛을 느끼기 전에 빨리 해치워버려야지’ 하면서. 지금은 부모님을 일 년에 몇 번 뵙는 처지라 마냥 그립기만 한 추억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어느 순간부터 토마토의 약간 새콤하면서 싱싱한 맛을 즐기게 되었다. 먹으면 자연의 풋풋한 에너지 같은 것이 몸속을 깨끗이 해주는 것만 같다. 과일같이 생긴, 하지만 사실은 채소라는 이 독특한 토마토와의 인연은 요리를 배우면서 좀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동안 토마토를 먹던 방식은 8등분을 해서 설탕이나 소금에 찍어 먹거나 주스로 갈아 마시는 정도였다. 서양요리를 하다 보니 토마토를 즐기는 법이 꽤 많고 다양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는 토마토로 소스를 만들어 파스타에 버무려 먹기부터 시작해서 생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듬성 썰기로 먹는 샐러드 등 거의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중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가스파초(Gazpacho)’라는 차가운 수프였으니. 수프라면 으레 뜨거워서 호호 불면서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확 깨는 음식이었다.
주재료는 토마토이고 거기에 오이·샐러리·피망·양파·바질 잎 등을 한데 갈고 소금·식초 등으로 간을 한 뒤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붉은색 수프다.
갖가지 채소로 새콤달콤하게 맛을 내 이탈리아나 스페인 쪽에서 더운 여름철에 별미로 만들어 먹는 요리였는데 요즘에는 뉴욕의 레스토랑에서도 여름철 단골 메뉴로 만날 수 있게 됐다. 토마토가 주재료인 만큼 여름철 햇볕에 무르익은 토마토로 만들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토마토 농장에 가다
마침 언니가 그동안 눈여겨봤다던 토마토 농장에 토마토를 사러 갔다. 토마토는 재배조건이 좋으면 종자를 심은 지 약 60일이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그 뒤 약 40일이면 첫 번째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단다. 사계절 내내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토마토이지만, 제철에 제대로 자란 토마토를 꼭 맛보고 싶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확 트인 곳에 빨갛게 열린 토마토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토마토 농장을 상상하면서 어찌나 즐거워했던지. 막상 도착해 보니 농장의 주인 아주머니가 토마토는 이미 다 따고 없다며 괜히 미안해하시는 것이 아닌가. 망연자실하던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근처에 더 큰 농장이 있다고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물어물어 도착한 농장은 비닐하우스가 쭉 서 있는 곳으로, 나무 그늘 아래에 따놓은 토마토를 쌓아놓고 등산객을 상대로 팔고 있었다. 확 트인 농장에서 직접 따보리라는 기대감이 좌절당하고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사정을 들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단, 절대로 토마토를 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뒤였지만.
샛노란 토마토 꽃, 엄지 손톱만 한 어린 토마토, 짙은 녹색의 꽤 자란 열매,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것, 무르익은 빨간 토마토 등 실제로 가지에 달려 있는 토마토들은 너무 싱그럽고 예뻤다. 혼자 보기 아쉬워 단계별로 사진을 찍었다.
 
햇볕 먹고 자란 진짜 토마토
돌아와서 맛을 보니 그동안 먹어왔던, 마트에서 구입한 익기 전에 미리 딴 토마토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신맛이 거의 없고 어찌나 달달하던지. ‘이런 토마토로 만든 주스였다면 어렸을 때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마시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농장에서 엄청나게 사온 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반은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더울 때 믹서에 갈아 마시면 얼음이 필요없으니 정말 진한 토마토 주스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독자들도 해보시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는 이번 토마토 농장에 다녀온 주목적인 ‘가스파초’ 수프와 조카를 위해 토마토 아이스바를 만들었다(마트에서 구입한 토마토로 만드실 때는 새콤한 맛이 더 있을 테니 설탕이나 꿀을 좀 더 넣어야 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녀와야 하는 곳이라 내년에 또 갈 수 있을까 싶다. 괜히 그동안 잘 먹어왔던 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이 맛이 아닌데…’라며 자꾸 비교할 것 같아 걱정이다. 토마토 사진이나 보면서 내년을 기약하련다.

----
김은희씨는 미국 CIA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2006년 귀국해 현재 언니 김윤정씨와 푸드 스튜디오 ‘그린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스파초(Gazpacho) 수프
재료(750㎖기준) 청양고추 10g, 토마토 200g, 그린고추 30g, 양파 25g, 오이 50g, 샐러리 50g, 바질 4g, 치킨 스탁(마트에서 깡통으로 판다. 생수로 대체 가능) 300㎖, 올리브유 12㎖, 발사믹 식초 10㎖, 레드와인 식초 15㎖, 소금·후추
만들기
1. 토마토는 꼭지를 따고 작게 잘라놓는다.
2.청양고추·그린고추는 꼭지와 씨를 제거한 후 잘게 썬다(매운맛을 좋아한다면 씨를 버리지 않는다).
3. 양파·오이·샐러리를 잘게 썰어둔다.
4. 믹서에 토마토·고추·양파·오이·샐러리를 넣고 간다. 어느 정도 갈렸으면 치킨 스탁·식초·올리브유·소금·후추를 넣고 살짝 더 돌려 간을 맞춘다.
5. 먹기 전 냉장고에 적어도 한 시간 보관해 시원하게 해서 먹는다.

단 토마토 레모네이드 아이스바
재료(아이스바 6개 분량) 토마토레모네이드: 토마토 3개, 레몬 주스 1/4컵, 설탕 4큰술, 오렌지 주스 1/4컵 우유믹스: 우유 1/2컵, 레몬 주스 2큰술, 설탕 2큰술
만들기
1. 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껍질째 믹서에 곱게 갈아 체에 내린다. 레몬 주스·설탕·오렌지 주스를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잘 저어 토마토 레모네이드를 만든다.
2. 우유믹스는 우유·레몬 주스·설탕을 넣고 역시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 잘 젓는다.
3. 아이스바 틀에 1/3 높이까지 토마토 레모네이드를 넣고 냉동실에 굳힌다.
4. 냉동실에서 3을 꺼내, 그 위에 2/3 높이로 우유믹스를 부어 또 얼린다. 꽁꽁 얼지 않았을 때 나무 막대기를 꽂아 다시 얼린다.
5. 마지막으로 토마토 레모네이드를 4의 위에 부어 얼리면 3단 토마토 레모네이드 아이스바가 완성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