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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사랑한 전설의 수첩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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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31면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들의 공통점을 아시는지. 불후의 명작을 만든 위대한 예술가? 맞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모두 몰스킨 수첩 애용자였다. 유명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첩이라면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몰스킨(MOLESKINE)’ 수첩

헤밍웨이가 1926년 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파리의 카페에서 몰스킨에 쓴 것이라나. 고흐는 몰스킨 수첩에 스케치를 했다. 그가 남긴 일곱 권의 몰스킨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다. ‘전설의 수첩’이라 불리는 몰스킨의 신화는 거짓이 아니었다.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명가의 수첩이니 위인들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왜 몰스킨일까. 내가 생각하는 몰스킨의 매력은 기품 넘치는 존재감이다. 깊은 색감의 검정 표지(처음엔 양피를 사용했다고 하나 현재는 비닐 재질이다)와 두툼한 두께의 미색 속지의 볼륨은 기록 본능을 자극한다.

이젠 세월이 흘러 나 같은 사람도 몰스킨 수첩을 사용한다. 위인들이 사랑한 물건을 씀으로써 마치 부적과 같은 주술적 힘이 내게 전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들러 구입하곤 했던 이 수첩은 이제 국내 매장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몰스킨 수첩은 평범한 여느 수첩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떠오르는 단상을 구애받지 않도록 배려한 여백의 구성과 두께 정도라 할까. 여기에 외피에 둘러쳐진 고무 밴드로 남은 페이지를 묶어둘 수 있게 해 제 멋대로 접히지 않도록 만들어진 게 전부다.

하지만 사용해 보면 보이지 않는 부분의 진가를 느끼게 된다. 중성 처리된 종이는 필기의 감촉을 부드럽게 받아준다. 종이는 감촉과 결을 따질 만한 민감한 소재인 것이다. 미세한 굴곡의 거마저 참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날카로운 감성을 충족시킬 만하다. 이를 별것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몰스킨은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다.

이들 종이는 일일이 실로 꿰어 커버와 단단히 제본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몰스킨은 수첩을 일회적 용도의 가벼움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메모와 기록을 위한 기능과 감촉·손맛의 결합은 비워진 여백을 상상의 크기로 확대시킨다.

몰스킨 수첩의 맨 앞면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만일 수첩을 잃어버렸을 때 되돌려받을 수 있는 연락처를 적는 난이다. 몰스킨 수첩에 담긴 내용은 어쩌면 세계를 움직이는 사안일지 모른다. 돌려받을 경우 상대에게 지불할 보상금액을 써 넣어야 한다.
난 그 난에 1억원을 호기롭게 적어넣었다. 몰스킨은 사용자에게 수첩에 담긴 내용의 가치를 정색하며 묻고 있다. 몰스킨은 작은 수첩을 팔지 않는다. 수첩에 담길 각자의 유용한 삶과 원대한 꿈을 파는 것이다. 실현의 능력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몰스킨의 채근은 정신이 퍼뜩 들게 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몰스킨의 철학에 공감할 일이다. 작은 수첩에 담긴 인간경영의 지침은 위풍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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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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